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gene Oct 26. 2020

이것은 영양제인가 피로제인가

캠린이에게 캠핑이란 

 각종 SNS의 너무나도 친절한 기능 중 하나는 작년 이맘때쯤 내 모습이 어땠고, 무얼 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SNS에 자주 사진을 올리는 편은 아니지만 뚜렷이 기억하고 싶은, 혹은 남았으면 하는 순간들을 기록용으로 저장해 둔다. 특히 본격적인(?) 캠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거의 논문 급으로 디테일하게 기록해 두는 버릇이 생겼다. 


 1년 전 오늘이라며 페이스북이 친절하게 나에게 알림을 준다. 사설 캠핑장 중에선 역대급 뷰를 가진 곳을 갔었던 때였군. 그땐 내 의자조차 없었네. 피엘라벤 칸켄백[1] 하나 매고 가방보다 더 큰 침낭 하나를 손에 덜렁덜렁 들고 캠핑에 어설프게 따라나선 게 고작 1년 전이었다.


 코로나가 터진 후 국외여행을 못 가게 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산과 바다를 찾아 캠핑을 느닷없이 입문하기 시작했고, 그 영향엔 매체에서 너도, 나도 소개한 캠핑 예능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그 덕에 나와 친구들은 작년에 캠핑 스팟으로 저장해 둔 곳들을 지워야 하나 고민이 들 만큼, 수많은 인파에 적잖이 당황했고, 친절한 블로거들 덕분에 인기 캠핑장과 노지 스팟은 BTS 콘서트 급 예매를 방불케 했다. 


 미국 국립공원부터 알래스카까지 백팩킹을 다니는 친구 덕에 작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캠핑장과 노지 스팟을 찾아다니며 캠핑에 입문했다.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작은 칸켄백을 들던 나는 55L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고가의 캠핑 장비들을 조금씩 사 모으며, 캠린이[2]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텐트를 피칭한 국립공원 캠핑장, 사설 캠핑장, 노지 등을 세어보면 대략 15개의 지역, 60일가량을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시간만 있으면 다녔다. 작년 겨울엔 강원도 영월의 동강 앞 노지에서 타프와 텐트를 치다가 바람에 빰 싸대기를 맞으며 욕 한 바가지를 했고, 올해 여름 태풍과 장마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던 때엔 충북 제천에서 새벽 대피 명령을 받고 차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미국 국립공원을 일 년에 두 달 이상 다니며 곰에게 쫓기고 번개를 맞을 뻔한 내 친구에 비하면 이 정도 에피소드는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지만 캠핑에서 즐기는 다양한 것들만큼 다녀온 후에 남는 잊지 못할 사건들 덕에 자꾸 다니고 싶어지는가 보다. 


 며칠 전, 함께 캠핑을 다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캠핑장의 5성급 호텔 격인 인제의 어떤 캠핑장 예약에 성공했다고. 당장 이번 주 일요일이었다. 모든 스케줄을 다 조정하여서 일~월 1박 2일 인제행 캠핑을 성사시켰다. 인기 유튜버가 소개한 후 갑작스레 예약이 힘들어진 이곳은 거의 3대가 덕을 쌓아야 예약에 성공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1년 치 예약이 꽉 차 있는 곳이었다. (BTS 콘서트 예매처럼, 예약날짜가 공개되면 몇 분 만에 좋은 자리는 이미 없어지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설 캠핑장치고 너무 깨끗하고, 온수는 우리 집보다 잘 나왔으며, 설악산 자락을 정면에 두고 있는 명당 캠핑장이었다. 


 그 캠핑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팟 중 한 곳을 올해 여름에 운 좋게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 자리 말고 더 좋은 VIP석이 있는데, 무려 그곳의 예약에 성공했다고 만사를 제치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제안이었다. 친구는 잠이 안 오던 새벽, 무심코 접속한 캠핑장 예약 사이트에 그 자리가 남아 있어 기겁하고 일정도 보지 않고 덜컥 예약했다고 했다. 


 함께 캠핑을 다니는 친구 부부와 예약에 성공한 금손 친구,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넷은 갑작스레 스케줄을 조정하고 그렇게 인제의 캠핑장에서 모였다. 만사를 제쳐두고 우리를 헤쳐 모이게 한 이 영양제와도 같은 ‘캠핑’은 기가 막힌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 차/커피, 음식의 맛으로 이루어진다. 더불어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불멍(불 보며 멍때리기)의 시간이라 하겠다. 


 이 끊을 수 없는 영양제는 사계절을 막론하고 수시로, 그리고 가끔은 느닷없이 즉흥적으로도 투여된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옛말엔 신기하게 틀린 말이 거의 없다. 집 나오면 개고생, 맞다. 캠핑하는 중에는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 점심 먹고 치우면 또 저녁 시간. 사진 한 장 찍을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근데 이상하게 이게 재밌다. 이 마약 같은 영양제는 복용 후의 일이 더 태산이다. 빨래, 각종 식기구 정리 및 설거지, 캠핑 장비 말리기 등등. 캠핑을 하면서 이게 영양제인지 피로제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직은 매 계절 바뀔 때마다 자연 속에서 먹고 마시고, 멍 때리는 그 짧은 순간들이 즐겁다. 이 영양제를 나의 어깨와 무릎, 발이 허락할 때까지 조금 더 복용할 것이다. 


          

[1] 한 때 우리나라에 아기 엄마들 사이에 유행한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Fjällräven의 인기 모델 배낭.

[2] 캠퍼+어린이의 합성어. 캠핑 입문자를 일컫는 말.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에서 출판작가를 꿈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