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거의 책을 읽는다. 2003년 직장을 강남으로 옮기면서부터 시작된 습관이다.(그전 직장은 집에서 5분 거리였다). 그사이 스마트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별로 도움 되지 않는 뉴스를 보거나, 혹시나 간밤에 놓친 단톡이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들어가 다른 이의 일상을 지켜보는 속에서도 나는 꿋꿋하게 책을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시간이 아니고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버스에서는 책을 안 읽고 음악을 듣는다) H에서 내려 지하철을 탄다. U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거나, C 역까지 갈아탄다. 10정거장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그래도 매일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으면 일주일 만에 책 한 권을 거의 읽을 수 있다. 물론 저녁 모임이 많은 날에는 진도가 더디다. 그럴 땐 토요일, 일요일을 활용한다.
지하철 타는 시간이 짧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 장을 마저 다 읽고 싶은데 내려야 할 때가 그렇다. 그러면 역에 남아 마저 읽고 개찰구로 나온다. 출근할 때는 못하지만 퇴근할 때는 일부러 돌아서 갈 때도 있다. 어쩔 때는 2호선 순환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상상도 한다.
지하철에서 가장 난감할 때는 어설프게 아는 사람을 만날 때다. 그 사람과 특별히 대화할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책을 볼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번은 퇴근 시간에 어설프게 아는 회사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났다. 하필 나랑 사는 동네가 비슷했다. C 역에서 U 역까지 한 정거장을 동행한 다음에 U 역에서 환승할 때 기회가 왔다. 난 들어오는 지하철을 타자고 했더니 거동이 불편한 그분은 뛰지 못하겠다고 했고 난 그게 기회라 생각해 열심히 뛰어 막 들어온 지하철을 잡아탔다. 급하게 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워에는 책 꺼낼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책 읽는 게 거의 사투다. 강남 쪽에 외근이 있으면 보통 9호선 급행을 타는데 요즘엔 보통을 더 많이 탄다. 급행은 빨리 집에 가지만 너무 혼잡해서 책을 읽을 수가 없는 반면에 보통은 느리지만 여유 있게 책을 볼 수 있다. 시끄러운 것도 싫다. 특히 옆 사람이 전화통화를 하면 바로 자리를 옮긴다.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하는 시점에 그다음이 궁금해 내리기 싫은 건 아름다운 걸 보고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난 독서가로 오인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