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에 대한 추억

by 조작가

본가를 찾으면 어릴 때 내 추억을 만나곤 한다. 주니어 세계문학전집이 그것이다. 64권 중 4권만 남아 있고 60권은 사라졌다.

어릴 때 어머니가 64권 문학전집을 샀던 것은 여동생이 워낙에 책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집에 읽을 책이 없다며 하도 투덜거려서 어머니 지인인 헌 책방에 가서 책을 잔뜩 사가지고 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동생의 독서는 이게 마지막이었던듯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동생이 책을 읽는 걸 본 적이 없고, 이즈음에 산 64권 문학전집은 거의 보지도 않았다. 여동생이 자기 학원에 와서 아이들에게 책 읽기 수업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책 읽는 게 너무 힘들다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때 책 좋아하는 여동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인쇄본을 보니 1982년과 1983년으로 되어 있다. 83년에 구입했을 것이다. 83년은 책 외판 사원들이 아줌마의 자식 교육열을 팔아 영업하던 시기다. 당시 어머니가 이 책을 구입할 때, 몇 번이나 망설이고 심사숙고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 책은 꼭 읽어줘야 애가 제대로 클 수 있다느니, 이 정도는 알아야 어디 가서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얘기를 외판원으로부터 줄기차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이 문학전집을 구입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비싼 것을 사주다니!

출판사는 금성이고, 인쇄는 삼화, 제책은 당산실업주식회사다. 옛날 책이라 한문이 많고 가로 쓰기로 되어 있다. 가격은 82년 본이 2500원, 83년 본이 3000원이다. 반반씩 계산해보면 전집으로 가격이 176,000원이다. 전집으로 한꺼번에 구입했으니 아마도 10만 원 초반대에 구입했을듯싶다. 현재 민음사의 50권 세트를 32만 원에 살 수 있다. 64권이면 50만 원 정도 될 테다. 물가도 5배 정도는 올랐으니 지금 시세로 50만 원 정도 된다. 하지만 지금의 50만 원과 그때의 50만 원은 다르다. 지금은 50만 원은 여행 한번 가는 비용이지만 80년대의 50만 원은 몇 달치 생활비다. 먹고 쓰는 데가 아니라 책으로 50만 원을 들였다면 꽤 큰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나에게 세계문학전집을 보고서는 이중에 얼마나 읽었냐고 물어봤다. 몇 권 읽지 않았다고 하니 작은아버지가 계획을 세워 64권 모두를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전집이지만 전집 모두를 읽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교사였던 작은아버지의 얘기이기도 하고 약간의 오기가 발동해서 1권부터 차례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권까지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몇 책은 밤을 새워 읽기도 했고(파우스트, 대지, 죄와벌 등) 몇 번 읽다가 실패한 책도 있다(대표적인 책이 주홍글씨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이 그리고 공연이,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듯 이 전집도 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줬다.

1. 부활 - 톨스토이
2. 로미오와 줄리엣 - 차알스 램
3. 좁은 문 - 지 드
4. 백마의 기수 - 시토롬
5. 첫사랑 - 투르게네프
6.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7. 무기여 잘 있거라 - 헤밍웨이
8. 첫 무도회 - 맨스피일드
9. 백경 - 멜 빌
10. 달과 6펜스 - 모옴
11. 아Q정전 - 노신
12. 적과 흑 - 스탕달
13. 수레바퀴 밑 - 헤 세
14. 폭풍의 언덕 - E.브론테
15. 쟝 크리스토프 - 롤랑
16. 전쟁과 평화 - 톨스토이
17. 대지 - 퍼얼 벅
18. 즉흥시인 - 안데르센
19. 몽테크리스토 백작 -뒤마(페르)
20. 아들과 연인 - 로렌스
21. 마지막 잎 - O. 헨리
22. 제인 에어 - C. 브론테
23. 카라마조프의 형제 - 도스토예프스키
24. 검은 고양이 - 포우
25. 목걸리 - 모파상
26. 두 도시 이야기 - 디킨즈
27. 이두의 무희 - 가와바타 야스나리
28.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 스티이븐슨
29. 대위의 딸 - 푸시킨
30. 레 미제라블 -위고
3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2. 마지막 수업 - 도데
33.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34. 춘희 - 뒤마(피스)
35. 삼국지 - 나관중
36. 붉은 망아지 - 스타인벡
37. 사랑의 삼중주 - 헤세
38. 가난한 사람들 - 도스토예프스키
39. 80일간의 세계일주 - 베른
40. 헴릿 -차알스 램
41. 작은 아씨들 -올 콧
42. 어머니의 초상 -퍼얼 벅
43. 홍당무 - 르나아르
44. 호반 - 시트름
45. 외제니 그랑테 - 발자크
46. 야성의 절규 - 런던
47. 피와 모래 - 이바레스
48. 청춘은 아름다와라 -헤세
49. 녹색의 장원 - 허드슨
50. 황태자의 첫사랑 - 마이어푀르스터
51. 여자의 일생 - 모파상
52. 파우스트 - 괴테
53. 수호전 - 중국고전
54. 십자군의 기사 - 센케비치
55. 주홍글씨 - 호오돈
56. 결투 - 체호프
57.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솔제니친
58. 허공에 뜬 사나이 - 베로우
59.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60. 정복자 - 말로
61. 어린왕자 - 생테쥐페리
62. 위대한 유산 - 디킨즈
63. 동물농장 - 오웰
64. 바늘없는 시계 - 메컬러즈

지금보니 꽤 훌륭한 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누군가가 어렸을 때, 금성출판사 주니어 세계문학을 읽었다면 나는 바로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하나씩 사라지는 걸까? 발이 있는 것도 아닌데. 큰 집이었던 우리 집인 상황을 감안하면 아마도 사촌 동생들이 명절 때 하나씩 집어 갔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아니면 정말 발이 있어서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갔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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