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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은 좋은 표정에서

by 조작가

말하기를 연습하면서 좋아진 게 하나 있다. 표정이다. 표정과 말은 뗄 수가 없다.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두 달 동안 말하기를 연습하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무표정한 표정이 조금씩 표정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난 표정 없는 얼굴로 살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삶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글쓰기는 표정이 없는 일이다. 오로지 머리만 쓴다. 내가 글을 쓸 때는, 특히 인터뷰 기사는 인터뷰이로 빙의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없다. 오로지 그가 되어 그로써 글을 쓰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 들고 사고를 확장하면서 집중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표정에 신경 쓸 수가 없다.


무표정하다고 말하면, 포커를 잘 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포커를 못 친다. 얼굴에 패가 다 보이기 때문이다. 좋은 패가 들어오면 좋은 걸 숨기지 못하고, 나쁜 패가 들어오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바둑 둘 때도 마찬가지다. 조그만 형세가 좋으면 표정이 좋아지고, 조금만 형세가 나빠지면 금세 시무룩해진다. 상대방과의 수 싸움으로 포커를 하고 바둑을 둬야 한다면, 이건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글 쓸 때 무표정함을 포커 칠 때나 바둑 둘 때 발휘할 수만 있다면 난 아마 훌륭한 도박사나 훌륭한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글 쓸 때만 그러한 무표정이 나온다.


글을 쓸 때 진지해지는 건 나의 오래된 버릇이다. 나와 문자나 카톡을 나눈 사람들이 당황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상시처럼 농담을 나누고 있는데 나의 문자와 카톡이 너무 심각하다며 깜짝 놀라곤 한다. 주로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글 쓸 때의 무표정이 나의 일상을 지배해 버린 것이다. 어떤 감정이 들어도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뫼비우스 증후군은 절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무표정할 뿐(생각해 보면 그러한 무표정 때문에 오해를 샀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긴 하다).


글을 쓸 때는 표정 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말을 할 때는 표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신문기자와 방송기자는 완전히 다른 직업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글쓰기에는 그럭저럭 자신이 있지만 영상이나 사진 앞에 서면 완전 바보가 된다. 어색하고 굳은 표정을 풀기가 힘들다.


말하기는 모든 조음 기관을 활용해야 한다. 조음 기관은 얼굴에 있다. 좋은 표정이 좋은 말하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발성발음 연습할 때 좋은 표정 짓기도 함께 연습한다. 그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표정 때문에 말하기가 잘 안 된다. 때론 일부로 바보처럼 웃기도 한다. 어렵다. 평생을 그 표정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표정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이야기해서 계속해서 발성발음을 연습하다 보면 좋은 표정을 짓게 될 것이고 그렇게 계속 좋은 표정을 가지고 발성발음을 연습하다 보면, 무표정한 얼굴이 표정 있는 얼굴로 변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두 달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전보다 표정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최근에 나를 보면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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