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5월의 밤(Maiennacht)'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실제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의 삼각관계를 그린 소설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가 소설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는 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3각 관계를 그렸다고 하니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하다. 이렇듯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는 삼각관계의 대명사로 꼽힌다.
소설 속의 폴은 39세의 여성으로,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온 로제(책에서는 40대라고만 나온다)와 6년 간 교제하고 있다.(시몽과 폴은 25살, 39살로 실제 브람스와 클라라의 나이차와 같다.) 하지만 로제는 바람둥이 기질이 있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느 날 폴은 젊고 순수한 25살의 시몽을 만나게 된다.(시몽은 로제의 옛 여인의 아들이다) 시몽은 폴을 진실하게 사랑한다. 폴은 시몽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받으면서도, 나이 차이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 폴은 안정적이지만 권태로운 로제와의 관계와 젊고 열정적이지만 나이차가 나는 시몽과의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시몽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로제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기고 소설은 끝난다.
소설에서 실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시몽이 폴에게 함께 브람스 연주회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질문을 들은 폴은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진다.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지만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그리고 폴은 시몽과 함께 브람스 연주회에 갔다는 이야기를 로제에게 한다. 그러면서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라고 말한다.
시몽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폴에게 말한 것은 자신의 수줍은 사랑을 가장 '브람스'답게 은유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브람스가 클라라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끝내 마음에 그 사랑을 묻어두고 떠나야만 했던 것처럼 시몽도 폴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묻고 떠나야만 했던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반면 폴에게는 브람스를 좋아한다는 질문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했는지 아닌지, 자신이 누구인지,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에게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런 의미다. 그리고 소설에서 로제는 폴에게 '당신 브람스 좋아해?'라고 묻는다. 폴은 '왜 그렇지 묻는 거지?'라며 따지는데 마치 슈만과 클라라 사이의 대화 내용처럼 보였다.
소설 속에서는 폴이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는다고 나온다. 만약 시몽의 시점이라면 시몽은 브람스의 어떤 음악을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적어도 폴이 시몽에게 그만 만나자고 한 대목에서는 브람스의 '5월의 밤'이 OST로 사용되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실제 브람스가 태어날 달,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 날, 그리고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날이 모두 5월이다. 그래서 그런지 '5월의 밤'은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
'5월의 밤’은 브람스가 독일의 시인 루드비히 횔티의 시에 곡을 붙였다. 시는 원래 4연으로 구성되어 잇지만 2연을 생략하고 나머지 3연으로 곡을 만들었고 곡 구조를 A-B-A로 만들었다. 첫 연은 5월 밤 풍경을 묘사하며 화자가 방황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는 행복해하는 새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을 단념하며 외로운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사랑을 단념한 회자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가사
은빛 달이 수풀 사이로 어슴푸레 빛날 때
잠결의 빛을 잔디 위에 흩날리고
나이팅게일은 플루트를 연주하네(노래할 때)
나는 슬픔에 잠겨 이 덤불 저 덤불을 방황하네
나뭇잎 사이에 숨어
한 쌍의 비둘기가 노래하네
그들의 더 없는 행복을
그러나 나는 고개를 돌리네
더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가네
그리고 고독의 눈물은 흐르네
언제쯤, 오 미소 짓는 그대 모습이여
석양빛처럼 타오르는 내 영혼을 비추는 그 모습
언제쯤 그대를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으랴?
그리고 고독의 눈물은
쏟아져 내리고
뜨겁게 나의
뜨겁게 나의 빰을 타고 흐르네
가사를 몰라도 5월의 밤을 부른 많은 성악가의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쓸쓸함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만 둬야 하는 모든 이를 대변하는 노래이자 위로가 되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