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생각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고, 또 어떤 것은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해선 배터리가 있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충전해 나간 배터리가 방전되고 만다. 중간중간 충전을 해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배터리를 이빨로 깨물어 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번 배터리는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아마 이번 배터리는 불량품일 듯싶다. 이렇게 빨리 닳아 없어지다니.
오늘 난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은 채 그냥 놔두었고 그와 더불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내일은 내일치 분량만큼만 충전해서 나갈 것이다. 만약 또 중간에 배터리가 떨어지면 이빨로 한 번 더 깨물고 쓰면 1-2시간을 버틸 것이다.
몇 해 전 후배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선배는 방금 전에 배터리를 새로 갈아 끼어넣은 것 같아요."
조만간 크고 빵빵하게 충전된 배터리를 하나를 살 생각이다. 물론 지금까지 써 왔던 배터리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버틸 만큼 버틴 다음에 말이다.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이 바라는 단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병에 걸리는 일뿐이라고". 그 섬마을 사람들도 한 번씩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켰나 보다.
지금의 배터리를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새로운 배터리를 사지 않고 한 며칠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한 동안 정지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