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리

by 조작가

바둑에 '아다리'라는 게 있다. 정확한 뜻도 모르고 쓰는 수많은 일본어 중에 하나다. '아다리'란 바둑에서 내 돌이 상대방의 돌에 의해 둘러싸여 빠져나갈 길이 없을 때의 상황이며, 이런 상황에서 내 돌은 상대방에게 따 먹히게 되고 상대방은 그만큼의 집을 얻고 나는 그만큼의 집을 잃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내 편의 돌이 상대편의 돌을 둘러싸면 '아다리'로 상대의 집을 따고 내 집을 그만큼 넓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다리'는 내 집을 더 많이 만들고 상대방의 집을 적게 만들게 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아다리'를 피하고 상대방의 돌을 따먹기 위해 '아다리'를 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요즘엔 '아다리' 대신 단수라는 말을 쓴다.(단어라는 게 뉘앙스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같은 뜻인데도 아다리와 단수는 뭔가 다른 말처럼 느껴진다. 글의 취지에 따라 일본어임에도 불구하고 아다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아다리'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한가운데에 있는 돌을 '아다리'로 따먹으려면 4개의 돌, 즉 좌측, 우측, 앞, 뒤로 둘러쌓아야 한다. 한 벽면에 돌이 놓여 있다면 벽 쪽을 제외한 나머지 즉, 앞, 좌측, 우측의 돌 3개로 둘러쌀 수 있고, 코너에 있으면 앞, 옆 돌 2개로 둘러쌀 수 있다.


나는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에 나오는 주인공 '나'의 나이와 같을 때 바둑을 알게 됐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비가 오면 바둑이나 화투판이 벌어졌는데, 어깨너머로 바둑과 화투를 배웠다. 당시 나의 바둑 실력은 동네 최고였고 신동으로까지 불리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12,3급 내외의 실력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나의 적수가 없었던 탓이다). '바둑 신동'인 나는 모든 상황을 바둑판으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아다리가 잘 보였다. 사실 바둑을 잘 몰랐기 때문에 아다리만 보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동네 아이들하고 모여 놀 때 내 주변에 아이들이 사방에 있고 내가 가운데 있으면 나는 적들에 의해 따 먹히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제의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운 좋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씩 하나씩 나를 포위해 오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에 여자 한 명이 앉더니 조금 이따가 왼쪽에 또 다른 여자가 앉았다. 이제 내 앞에 다른 여자가 있기만 하면 난 '아다리' 상황이 되어 따 먹히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여기서 따 먹힌다는 표현은 절대 야한 표현이 아님을 밝혀둔다). 양쪽 두 여자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내 코를 건들기 시작했다. 향수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두 명의 여자 모두 독특한 향수를 쓴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초조했다. 또 다른 여자가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난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왼쪽 여자 앞에 섰다. 난 아다리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내 앞자리에 누가 서느냐에 따라 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여자가 내 앞에 서는 게 아닌가. 결국 난 4명의 여자에 둘러싸여 포위되었고 난 결국 따 먹혔다. 4명의 여자들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로 이미 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아다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그렇고 회의할 때도 그렇다. 10명 이상 모이는 미팅이나 모임일 경우 '아다리' 상황은 자주 만들어진다. 9살부터 지금까지 난 '아다리'를 피하기 위해 무던 애썼지만 모든 '아다리'를 피할 순 없었다.


오늘도 난 '아다리'를 당하지 않도록 잘 피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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