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의원이 분교 출신인 자신이 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테스트 때문이라고 얘기하자 해당 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이 해당 학교는 분교가 아니라면서 왜 모교 비하 발언을 하느냐고 반박에 나섰다. 모 의원은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좋은 제도이지만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제도가 후퇴하지 않도록 법제화('공공기관 공정채용법 제정안, 블라인드 채용법')를 발의하게 된 배경에서 자신의 출신 학교와 블라인드 제도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인데 엉뚱하게 분교 논란이 일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시작된 것은 2017년 경부터다. 그 해 몇몇 대기업도 동참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말 그대로 '스펙'이 아닌 '사람'을 보고 인재를 채용하는 방식이다.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외모, 가족사항뿐만 아니라 어학, 동호회 활동, 해외연수 대신 능력과 열정을 보고 인재를 뽑겠다는 뜻이다. 한때 본적(本籍)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출신지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본적을 바꾸자 원적(原籍)을 이력서에 기재하게 했다. 아버지 고향이 입사를 결정하던 시기다. 지금은 아버지 고향보다는 학력 또는 학벌, 어학 점수, 봉사활동, 부모님 직업이 더 중요해졌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등장한 배경이 씁쓸한 이유는 그동안 스펙으로 인재를 뽑았다는 반증 때문일 것이다.
'복면가왕'이 인기다.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를 펼치는 게임 방식에 환호하는 이유는 이름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가수를 재평가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복면을 벗는 순간 청중들은 모두 놀랜다. 얼굴을 보고 노래를 듣는 것과 얼굴을 모르고 노래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복면을 씀으로써 청중 평가자나 가수나 오로지 노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제품 비교 테스트에도 블라인드 방식이 사용된다. 가격이나 스펙이 평가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제품으로만 평가할 때 쓰인다. 한때 오디오나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블라인드 방식은 일종의 '힘없는 자의 항변'과도 같은 것이다. 이름에 밀려 무대에 설 수조차 없는 가수나 좋은 제품이지만 브랜드에 밀려 소비자가 외면한 제품이 '계급장 떼고 제대로 붙어보자'라고 정면승부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이름값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도 봐야 한다. 학력 또는 학벌이 좋은 사람을 선호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과 성실성을 평가한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겠냐는 믿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단 한 번 면접을 잘 봤다고 그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시험 운이 유독 좋은 사람이 있고 반면 시험만 치르면 긴장해서 제대로 못 보는 사람도 있다. PT 한 번으로 평가할 때도 매우 위험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PT만 보고 판단한다면 결국 PT 잘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경우 싼 제품이 비싼 제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블라인드로 평가하지 않았다면 평가자들 대부분은 비싼 제품에 더 좋은 평가를 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평가자 스스로가 평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비싼 제품이 싼 제품보다 더 좋을 것이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혹시 싼 제품이 비싼 제품보다 더 좋게 보인다면 이는 자신이 뭔가 잘못 판단했을 거라 생각한다. 평가자는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오히려 더 당황한다. 그냥 제품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소비자가 기업과 브랜드를 보고 제품을 고르는 이유다.
스펙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것보다 블라인드 채용이 기회의 균등이라는 점, 그리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평가 시스템만 보완된다면 괜찮은 제도다. '공공기관 공정채용법 제정안, 블라인드 채용법'이 통과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