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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l 22. 2020

배움에 굶주려야 한다

Are you hungry? 

 “군자는 음식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주거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성실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道를 지닌 사람을 가까이하여 자신을 바르게 한다. 가히 호학好學이라 이를 만하다.” - 《논어》중에서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이다. 비록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고, 먹는 음식의 질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음식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편의점에 가면 도시락을 쉽게 살 수 있고, 예전에 혼자 해서 먹기 힘들던 곰탕, 만둣국, 육개장 등도 인스턴트식품으로 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고, 야채를 다듬고, 고기를 굽고, 음식을 만드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식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음식 조리법도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면 바로 나온다. 


 주거 환경도 마찬가지다. 비록 부동산 가격이 출렁이고, 내 집을 구한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지만, 환경 자체만 본다면 30~40년 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아파트 건설 업체 간의 경쟁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환경을 개선하고, 건축법도 많이 개선되었다. 유럽식 인테리어로 꾸미는 사람들도 있고, 베란다에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제 음식을 배불리 먹고, 편한 환경에서 산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매슬로의 욕구의 5단계를 살펴보자. 첫째 생리욕구, 둘째 안전욕구, 셋째 애정, 소속 욕구, 넷째 존경 욕구, 다섯째 자아실현 욕구가 그것이다. 


 음식을 통해서 생리욕구를 해결하고, 안전한 집에 살면서 안전욕구를, 가정을 이루거나 연애를 하면서 애정, 회사나 사업, 다른 단체에 소속되면서 소속 욕구를 만족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존경을 받게 된다(물론 모두가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가장 높은 단계가 자아실현 욕구다. 물론 네 가지의 욕구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고, 존경받고, 돈 잘 벌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아실현 욕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제일 높은 단계에 있다고 그것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세계 어딘가 누구는 지금도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당장 하루살이가 중요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기본적인 욕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해도 문제가 된다. 문제가 된다는 것은 욕구가 ‘욕심’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먹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건강을 잃게 되고, 더 크고 넓은 집을 구하려다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을 놓치게 된다. 


 벤 아잔 시리파뇨는 말레이시아 3대 부호인 아난다 크리슈난의 외아들이다. 그의 자산은 무려 약 6조 원에 달한다. 그는 18세 때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태국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승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속세를 등지고 승려의 삶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현대판 ‘싯다르타’라고 칭송한다. 


 물론 이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다.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용의 도’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침은 모자는 것보다 못하다.  


 “중용 :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으로 사서의 하나인 ≪중용≫에서 말하는 도덕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중(中)’이며,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용(庸)’이다.”


 그렇다면 나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하면서 살아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기본적인 욕구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을 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을 아낀다는 것은 자신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과시하거나 티를 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내가 갖고 있는 ‘부’나 ‘명예’, 심지어 자식에 대한 자랑도 결국 다른 사람의 질투를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배움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다시 공부할 수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학문에 도전할 수 있다. 업무와 관련된 공부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배울 수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철학, 역사, 과학, 경제 등도 공부할 수 있다. 


 배우다 보면 알게 된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작고, 이 세상과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그러면서 지혜를 터득하게 되고, 삶을 겸허하게 바라본다. 그것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더 많이 읽고, 알게 될수록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아무리 사소한 음식도 소중하게 느끼게 된다. 앞서 언급한 말레이시아의 부호도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하는 삶에서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느꼈다. 


 우리는 바쁜 생활로 인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하는지 한 번 따져보길 바란다. 스마트폰에서 쇼핑 거리를 찾거나 가십 거리를 읽고 있거나, SNS의 끝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 그곳에는 나 자신의 모습이란 없다. 그것은 허무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다. 물론 이 또한 적당히 즐기면 괜찮지만 과할 때 문제가 된다. 


 나 혼자 그런 삶을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즉 공자가 이야기한 ‘자신만의 도를 지닌 사람’과 어울린다면 계속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린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들과 마음이 맞게 마련이다. 더 이상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공부를 좋아하고, 같은 도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행복을 느끼는 마음도 달라질 것이다. 공부에 굶주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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