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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l 25. 2020

나이가 들수록 변하는 나의 ‘격’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自立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迷惑되지 않았고, 쉰 살에는 천명天命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는 어떤 말이든 그대로 이해(耳順)되었다. 그리고 일흔 살에는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從心) 법도를 넘지 않았다.” - 《논어》위정 중에서


 우리는 살면서 변한다. 10년 전, 20년 전의 나의 생각과 모습이 지금의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나의 중심(core)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이를 둘러싼 생각은 바뀌게 마련이다. 주변의 환경, 경험 그리고 배움을 통해서다. 특히 ‘배움’은 중요하다. 환경과 경험은 직관적이지만 배움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행위다. 그래서 예전부터 ‘예’를 중요시했고,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다.


 중국의 철학자 순자는 ‘성악설’(인간의 본성은 악하다)을 믿었기 때문에 ‘예’를 중요시했다. 예와 법으로서 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도 성선설(인간의 본성은 선하다)을 믿기는 하지만 사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격한 법을 집행하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을 교화시키려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다시 선한 마음을 찾기를 바람도 있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바뀌려고 하고(성선설), 또 누군가는 변하지 않고 또다시 죄를 저지르게 된다(성악설).


 우리는 어릴 적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마치 법의 한계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확인하려는 듯 나와 남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렇게 실수를 저지르면서 점차 잘못을 깨닫고 변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는 고민도 많고, 방황도 많이 했다.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걸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을 뜻에 두었다고 했는데(물론 그 전에도 열심히 공부했겠지만), 나도 그즈음에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대학에서 음악과 전공과목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결국 IT 회사에 취직해서 일했다. 서른 살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은 했지만 정신적으로 아직 자립하지 못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음악을 다시 공부했다. 요새 말로 워라밸을 일찍부터 실천한 셈이다. 일도 열심히 하고, 취미 생활도 전문가 수준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렇게 서른 살은 훌쩍 지나갔다.


 사실 마흔이 제일 무서운 순간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인생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해서 슬기롭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산인 몸과 마음을 모두 축내고 쓰러진다.

 마흔이 되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 상사뿐만 아니라 부하직원의 실적 및 심성도 잘 관리해야 한다. 또한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받는다.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동기와도 비교가 되고, 차이가 점차 벌어짐을 느낀다. 당연히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운동을 하지 않게 된다. 주말에 등산을 가더라도 등산 후 음주량이 평상시보다 더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흔을 넘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후회가 될 수 있다.


 “미혹 :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미혹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나의 가치관을 세우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가치관은 말 그대로 가치(Value)를 어디에 두는 가이다. 나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가족인가? 회사인가? 나 자신인가? 물론 세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다. 회사, 가족, 나 자신 모두 중요하다. 거기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마흔은 고비이면서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서른 살까지 잘 나간다고 하더라도 마흔에 접어 들어서 잘못된 길로 발을 내딛으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 있다. 마흔은 나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다. 그것은 결국 50대의 지천명의 단계에 나아가기 위한 길이다. 죽음의 문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존재의 이유는 또 무엇일까?’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듯이 나의 존재에도 이유가 있다. 40이나 50이 넘으면 돌려줄 때다. 내가 가진 것들과 배운 것을 세상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 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회사에 있을 때는 익숙한 업무와 환경에 있었지만 사회로 나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10년, 20년, 30년의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사회에 나오면 다시 초보자다. 한 마디로 ‘인생무상’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강연가이면서 작가인 브랜드 버처드는 감정의 회복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나 자신에게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배운다’. 즉, 퇴직한 후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고 자책하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배운다. 또 다른 일을 찾거나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하거나 배워야 한다.

 둘째, 주변에 함께할 사람들을 찾는다. 나와 같은 도道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찾고 같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도 나의 삶의 패턴을 유지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폭주하거나 포기하면 안 된다. 퇴직을 하더라도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세상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우리에게 ‘미혹’은 언제나 찾아온다.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등 평생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만약 ‘탈선’하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된다. 탈선했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다시 평소의 노력을 통해서 리듬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나만의 ‘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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