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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06. 2020

등에 칼을 맞아 본 적이 있는가?

경쟁에도 기사도 정신이 필요하다.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으나,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활쏘기 시합이다. 시합을 할 때 서로 상대방에게 읍하고 양보한 뒤에 올라간다. 활을 쏜 뒤 또 서로 읍하고 다시 내려와 술을 마신다. 이것이 곧 군자의 다툼이다.” - 《논어》팔일 중에서 


 공자가 있던 시대는 춘추시대다. 수십 개의 나라가 서로 영토 다툼을 벌일 정도로 불안한 시국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자는 다툼을 하더라도 군자로서 예를 강조했다. 활쏘기 시합을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읍하고 양보한 뒤에’ 올라가고, 활을 쏜 뒤 ‘서로 읍하고 내려와’ 술을 마시라고 했다. 


 한 마디로 진정한 스포츠맨 정신을 설파한 것이다. 거기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인 ‘인’(仁)이 있었다. 그의 이러한 가르침에 감복해서 수많은 제자들이 모였다. 그 수는 무려 3천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중에서 그의 사상을 물려받고 이름을 떨친 사람도 70여 명이었다. 


 하지만 막상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무려 14년간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에게 ‘도덕 정치’를 강조하고 설득했으나 그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때는 ‘약육강식’의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내가 등을 보이면 여지없이 누군가 칼을 꽂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시대였다. 한 마디로 강자만이 살아남았다. 약자들은 눈치를 보면서 여기저기 붙어있어야 했다. ‘인의’를 설파하는 학자보다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손무와 같은 병법가가 더 각광을 받았다. 


 그렇다면 2,5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그래도 춘추시대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사회다. 물론 세계 곳곳에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국가에서 법과 규율을 만들어서 사회를 안정화시키려고 한다. 국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안전한 국가에서는 안심하고 거리에서 걸어 다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법에 호소할 수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서 공정하게 경쟁한다. 물론 기업과 정치인이 결탁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회사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기업들은 점점 더 생존하기가 힘들다. 예전보다 정보가 훨씬 더 투명하고 사람들도 이제는 부정한 기업들을 그냥 봐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한다. 마케팅을 하고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 회사도 그렇다. 최대한 사람들을 능력에 따라서 평가하려고 한다. 기존의 인사시스템을 개선하고, 능력 있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을 키우고자 노력한다. 

출처: Pixabay

 하지만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과연 회사 내에서는 공정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가? 


 아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회사 내에서는 겉으로 웃으면서 뒤로는 칼을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여러분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등에 칼을 맞아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진짜로 칼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다. 회사 내에는 유난히 정치력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를 적으로 규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과 경쟁을 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아군으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칼이 나를 겨누더라도 눈치채기 어렵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사이가 좋아서 눈치를 못 채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경쟁자가 되는 순간 조심해야 한다. 언제 나의 등에 칼이 꽂힐지 모른다. 


 회사만큼 말이 많은 곳도 없다. 사실 업무로 만난 동료들과 이야기할 주제는 상사, 동료, 후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끔씩 양념 삼아 연예계나 부동산, 재테크,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남에 대한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 도마에 오르면 순식간에 ‘참치 해체쇼’를 당하기 일쑤다.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은 이러한 조직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누군가를 도마에 던져놓는다. 직접적으로 칼을 먼저 꽂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칼을 먼저 꽂는 사람은 이렇다. 


 “XX는 요새 부장한테 너무 아부하는 것 아니니? XX는 너무 개념이 없더라.” 


 더 고단수인 사람은 슬쩍 도마에 올린다.


 “요새 XX에 대해서 말이 좀 많더라….” 


 이때 미끼를 문 사람들은 동조한다. 더 궁금해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세상에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도마에 오를 생선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 술자리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공자가 설파한 바와 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해야 하는 데 이렇게 반칙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나는 과연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가? 나의 경쟁상대를 뒤에서 험담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실력으로 인정받았는가? 


 물론 “네”라고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가 등에 칼이 꽂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출처 : Pixabay

 직장 생활도 결국 ‘약육강식’의 사회다. 능력 있는 자는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경쟁에서 도태된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됐든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 비겁한 방법으로 남을 짓밟고 오른 사람은 언젠가 보답을 받게 된다. 물론 꼭 정의가 승리한 법은 아니다. 욕을 먹어도 더 오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다소 억울하더라도 공자의 말씀을 명심해야 하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다. 적어도 나는 기사도 정신을 갖고 정당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일로서 승부를 봐야 하고 남을 비난하면 안 된다. 그것은 곧 사상누각이 될 수 있고, 나 자신한테 미안한 일이다. 


 '예'를 갖추고 활을 쏜 후 '예'를 갖추고 내려와야 한다. 술을 마시면서 결과를 이야기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남을 뒤에서 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뒷담화가 매력적이더라도 적당히 해야 한다. 적어도 남의 등에 칼을 꽂거나 활을 쏘지 말자. 그것이 바로 군자의 길(道)이고, 나의 길(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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