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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22. 2020

마음가짐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子曰 : 自行束隋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가 말했다. “스스로 깨달아 엄격하게 자신을 수양해 진취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경우, 나는 이제껏 이러한 사람에 대한 교육을 거절한 적이 없다.”  


 공자는 교육에 관대했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에 관대했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신분과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논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의 대표적인 제자 자로(본명 : 중유)(BC 542년 ~ 480년)는 그야말로 ‘야인’이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장사였지만 공자를 만나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 후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수행하면서 열심히 학문을 닦았다. 나중에는 벼슬길에 오르기도 했다. 


 공자가 제일 총애했던 애제자인 안연(BC 514년 ~ 483년)은 평민이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덕德을 실천했다. 다른 제자들은 학문을 닦아서 출세 길을 찾고자 했으나 안연은 늘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랬기 때문에 공자조차도 안연의 배움의 자세를 보고 감탄할 정도였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한탄했다. 

 “안회만이 내 뜻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오.” 


 청출어람(靑出於藍), 즉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이 말은 바로 안연을 두고 한 말이나 다름없다(물론 이 고사성어의 기원은 후대의 순자가 언급한 말 중의 하나다). 어떤 학자는 안연이 죽음으로써 공자의 후계자가 끊어졌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였다. 후대에서는 그의 제자 증자(BC 506년 ~ 436년)와 공자의 손자 자사 그리고 또 다른 제자인 자하와 자유가 뒤를 이었다고 보고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안연에 대한 공자의 애정과 기대는 컸다. 오죽하면 공자는 그의 부유한 제자, 자공(BC 520년 ~ 456년)에게 이런 질문을 할 정도였다. 

 “안회와 너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나은가?” 


 자공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자공도 상당히 총명하다. 공자의 보디가드 자로나 성실함의 표본인 증자는 늘 배운 것을 따라 하고 실천하기에도 벅찼으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안회는 무엇이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 무엇보다 그가 배움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는 처절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의 욕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비록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진지하게 공부했다.  


 안연뿐만 아니라 공자는 3천여 명의 제자를 두면서 많은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당시에는 변변한 서당이나 학교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말은 제자들에게 ‘피와 살’이 되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인仁’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은 제후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춘추시대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공자의 수업을 듣기 위한 수업료는 얼마였을까? 


 육포 묶음이 전부였다. 당시 육포 묶음은 예물로써 격이 낮아서 누구나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속수지례’(束脩之禮) 라고 한다. 속수지례는 말 그대로 ‘육포 묶음의 예’로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드리는 선물’을 이른다고 한다. 물론 신분에 따라서 선물의 레벨이 달랐겠지만 공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업을 듣기를 원했다. 


 하지만 공자가 무조건 관대한 선생은 아니었다. 공부하는 자세가 안 된 학생들은 엄하게 야단쳤다. 《논어》에는 단골 메뉴처럼 나와서 혼나는 제자들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자는 무인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서 ‘거구’였다. 같은 거구였던 자로가 ‘움찔’했던 것을 보면 공자도 힘깨나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갈을 했다면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한마디로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고루 갖춘 선생님이다.


 공자가 강조한 바와 같이 ‘마음가짐’과 ‘마음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은 눈빛이 우선 다르다. 절실함과 절박함,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당연히 무엇이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학문을 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계를 위해서 또는 남들이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따라 하고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CEO나 인물들은 확실히 마음가짐이 다르다. Intel에 밀려서 CPU 시장에서 한없이 추락하던 AMD. 2014년 이 회사의 CEO가 되어서 다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CEO는 리사 수 박사였다. 그녀는 AMD의 본질적인 경쟁력에 집중해서 어려운 일을 해냈다. 마침내 AMD의 주가는 바닥이었던 $2에서 지금은 무려 $83(2020.08.21. 기준)로 인텔보다 높다. 


 “정말, 정말, 정말로 중요한 일을 골라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에 먼저 도전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리사 수, 2017.5.19. <뉴욕 타임스>


 지금 나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다면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자. 정말로 힘들면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휴식을 하면서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나의 중심은 무엇인가? 이렇게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아보자. 이제는 그냥 남이 가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 마음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마치 공자의 제자 안연이 그랬던 것처럼 ‘극기복례’의 자세를 잊지 않고 수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인생을 수동적으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만의 도道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음가짐’으로 나타난다.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나는 거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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