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23. 2020

마음의 여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공자의 삶을 돌아보며 


 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
 자지연거 신신여야 요요여야 
 공자가 한가로이 살고 있을 때, 의관은 정제되었고 그 모습은 평화스러웠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아버지는 나라의 무관이었다. 그는 늦둥이였다. 아버지가 60세 때 세상에 태어났고, 3살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혼인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사생아였다. 당연히 아무런 유산도 받지 못하고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눈이 멀어서 그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그가 16살이었을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그는 아버지에게서 큰 키와 체력을 물려받아다. 그는 거칠게 살면서 한 가지 목표를 갖게 되었다. 바로 ‘입신양명’이다. 출세를 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뒀다. 반면 자신에게 강점인 무인으로서 삶은 포기했다. 아마 어릴 적부터 거친 일을 하고 세상의 온갖 일을 경험하면서 정신적으로 더 성숙했기 때문이다. 학문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또한 글과 학문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도덕정치를 실현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 학교는 없었고, 스승도 없었다.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배웠다. 그러다가 20세에 가정을 꾸리고, 30세에 마침내 뜻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철학자 공자의 삶은 불우했다. 가난했고 어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아서 제대로 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공부를 결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학문에 정진해서 마침내 큰 성과를 이뤘다. 이후 그가 성공해서 벼슬자리에 오르고 도덕 정치를 실현했다면 그의 목적을 이룬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노나라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기여한 바는 있었지만 계속 중임되지 못했다. 마침내 60대에 14년간 세상을 주유하면서 자신의 이상정치를 펼칠 곳을 찾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공자는 의연했다. 비록 자신의 뜻을 크게 펼치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후학양성에 힘썼다. 그가 말한 대로 예순에 순리를 알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는 크게 출세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비웠다. 세상의 도리에 맞춰서 살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염원하는 도덕정치를 설파하는 것이 낙이었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한다.” - 《논어》학이편 
출처: Pixabay

 물론 세상에 초연한 그 조차도 큰 상심을 겪었다. 그의 말년에 아들 공리가 죽고, 이어서 가장 아끼던 제가 안연 그리고 듬직한 제자였던 자로도 세상을 떠났다. 더군다나 자로는 위나라의 반역에 휘말려서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젓갈로 만들어졌다. 이에 슬퍼한 공자는 집안의 젓갈류 음식을 모두 버리고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또 다시 큰 슬픔을 겪은 공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위에서 언급한 “신신여야 요요여야”는 의관이 정제되어 있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는 말이다. 공자에 대한 이러한 모습은《논어》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은 문구다. 거구의 공자가 홀로 조용히 정자에 앉아서 저 멀리 산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이 느껴진다. 


 이미 어릴 적부터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환갑에도 세상을 주유하고, 황혼기에는 상실의 아픔을 겪었지만 말이다.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결국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부와 명예를 탐하지 않고 공부하고 도를 닦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젊은 시절 쓴 소리를 한 학자가 있다.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렇게 일갈을 날린 사람은 노자였다. 공자가 30대에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노자를 찾아가니 그는 공자가 말하는 ‘인’과 ‘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인’과 ‘예’도 자연의 법칙에서 어긋나는 인위적인 것이라는 말이었다. 비록 공자가 추구하는 이상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그는 노자의 말을 잘 경청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사람은 ‘인’으로 대하고, ‘예’를 가르쳐서 교화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노력했다. 


 우리도 어릴 적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에 나와서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그렇게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가 어느 순간 나이가 들고, 나의 과거가 하나의 꿈과 같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한줌의 재가 되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출처: Pixabay

 COVID-19로 전 세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고, 무엇보다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인생에서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거짓’보다는 ‘진실’에 더 귀 기울이고,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공자와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가르침과 더불어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비록 그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서 신분제를 신봉했지만 그가 주는 메시지는 중요하다. 학문을 열심히 닦고, 남한테 인정을 받지 않더라도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인’, 즉 자비와 사랑이 필요함을 이야기했고, ‘예’로서 이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년은 그렇게 노력한 후에 남겨진 것이었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철학자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과연 어떨까? 삶의 끝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돈’과 ‘명예’, ‘재산’과 ‘편안함’을 탐닉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나눠주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할까? 인생의 끝에서 삶을 돌아보면 나의 가치를 찾기가 더 쉬워진다. 결국 ‘도’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은 더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어렵더라도 좀 더 크게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자. 그렇게 하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것에 좀 더 감사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다. 

출처: Pixabay


작가의 이전글 마음가짐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