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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Oct 28. 2020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논어》의 마지막 이야기 

 子貢曰 :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자공왈 : 부자지불가급야 유천지불가계이승야  


 자공이 말했다. “스승님의 높이는 도무지 이를 수 없어,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오.”


 자공(기원전 520년경 ~ 456년경)은 ‘부’와 ‘명예’를 이룬 공자의 제자다. 자신감이 대단하고, 자존감이 높았다. 공자의 애제자 안연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는 제자였다. 사실 그의 자신감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논어》에는 공자와 자공의 대화가 종종 나온다. 그만큼 공자도 자공을 아끼고, 실력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그는 공자보다 31세 어렸지만 언변이 뛰어났고, 정치와 이재에 능했다.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공이 한번 돌아다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 《사기》의 ‘중니 제자 열전’ 중에서 


 당연히 자공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어떤 사람들은 그와 스승인 공자를 종종 비교했다. 누군가는 자공이 스승보다 뛰어나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단호하게 부정했다. 자신은 결코 스승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스승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이를 수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스승을 존경했고,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6년 상을 치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공을 보면 상대적으로 실패한 공자와 비교된다. 공자도 52세에 대사구라는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으나 자신이 섬기던 왕이 정치에 소홀하자 3년 후에 사직했다. 50대 중반에 15년에 걸친 유랑을 떠났다. 만약 공자가 부와 명예를 탐했다면 그냥 현실에 안주해서 노나라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자신이 모은 자산을 포기했다. 이러한 과감한 용기와 자신이 믿는 가치인 ‘도道’를 추구했기 때문에 공자는 위대한 군자가 될 수 있었다.  


 자공도 처음에는 자신이 스승보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2년째에는 자신이 스승과 수준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3년이 되면서 스승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그를 ‘성인’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공자가 제자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자는 자신이 믿는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했다. 도덕정치를 위해서 발로 뛰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위정자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공자는 ‘인仁’을 실천했다. 약자에게 겸손하고, 백성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나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고, 실제 그의 제자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셋째, 당시 혼란한 정국에서 그는 ‘평화’와 ‘안정’을 추구했다. 위정자들에게 백성을 중요시하고, 전쟁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세상을 주유할 때, 위나라의 영공이 그에게 오직 군사 문제를 묻자 공자는 군사 문제는 알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답한 후 위나라를 떠났다. 또한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세금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호의호식을 누리려는 집권자들은 거부반응을 보였다. 


 공자를 존경한 사람은 당대의 제자와 백성들뿐만이 아니었다. 후대를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배우면서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그와 제자들이 남긴 어록과 행동들은 《논어》로 엮어져서 많은 이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공자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비록 내가 공자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를 동경하고 있다. 나는 공자가 남긴 책을 읽어 보고, 그 사람됨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고 싶었다.” - 《사기》의 ‘공자세가’ 중에서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마천(기원전 145년 ~ 86년)도 공자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중과부적으로 진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받았다. 그도 젊은 시절 낭중이 되어서 한 무제를 수행하면서 여행을 했고, 태사령이 되어서 역사를 편찬했다. 소위 잘 나가던 그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따르다가 치욕을 얻게 되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명예롭게 죽음을 선택했겠지만 그는 더 큰 가치, 즉 후대에 바른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를 감수했다. 이때 그에게 큰 힘을 준 것이 공자였다. 공자도 자신이 믿는 가치를 끝까지 사수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사람의 인생에 힘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구, 동료 등 다양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일에 쓸 수 있고, 글을 써서 책을 남길 수도 있다. SNS에 나의 생각을 남기거나 좋은 충고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당장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무엇을 남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40대를 넘어서면 즉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내가 갖고 있는 가치를 환원해야 한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우리도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깨달은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인 공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과 실패와는 무관하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지만 그의 사상은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힘이 되었다. 


 “현실정치에서는 실패한 듯 보였지만, 그의 사상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는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다.” - 현대 지성의《논어》중에서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보자. 내가 세상에 남길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몇십 년, 몇 백 년 후에는 또 어떤 가치를 지닐까? 살면서 꼭 해봐야 하는 질문이다. 거창하면서도 거창하지 않은 질문이다. 이러한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면 나의 삶의 질이 바뀌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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