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40대입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말버릇이 있다.
“이 나이에 무슨”, “너무 늦었어”
죽기 전까지는 아직 늦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이런 말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한다. 그렇게 자신의 나이에 ‘선’을 긋는 것은 나의 ‘한계’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신체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잘 늙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에 잘 아는 형님이 혼자서 한 달간 제주도 올레 길을 걷겠다고 나섰다. 아직 50대 초반이라서 체력은 좋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매일 수십 km를 행군하듯이 걸어야 하고, 편한 코스도 있지만, 어려운 코스도 있다. 그래도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면서 행복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매일 올리는 것을 보고, 역시 멋진 중년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형님은 은퇴를 한 후 개인 투자자로서 활동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비슷한 여건의 분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선 마음의 여유가 없고, 금전적인 부담을 느껴서 그렇다. 그런데, 더 큰 이유는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걷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무릎이 성하지 않아서’ 등 온갖 이유를 댈 것이다.
무리하게 운동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지만, 그래도 미리 나에게 한계를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 시도조차 안 하고, 포기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한테 미안한 일이다.
“그는 운동선수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인 40대 중반이지만 역대급 체력을 자랑한다.” - 《코미디 닷컴》, 2021.04.02.
바로 지난 2월 8일 NFL 슈퍼보울(챔피언결정전)에서 소속팀이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톰 브래디다. 그의 나이 44세였고, 역대 최고령 MVP였다. 쿼터백인 그는 이날 경기에서 29차례 패싱 공격 중 21번이나 성공시켰다고 한다. 그야말로 강철체력과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것은 그가 평소 철저한 음식 관리를 통해서 자신의 건강을 유지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자신을 관리하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아버지는 칠순의 나이에 혼자 아프리카로 자유 여행을 한 달간 다녀오셨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아버지의 강력한 열정을 말릴 수 없었다. 광대한 초원에서 사파리를 즐기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는 어떤 가이드 집에 초청을 받아서 같이 밥도 먹었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오신 후 거의 사흘간 방에 쓰러지셔서 피곤함을 달랠 정도로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아버지는 또다시 나섰다. 이번에는 남미를 한 달간 다녀오시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지인들, 관광객들과도 어울리고,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등의 관광지에서 멋진 사진 작품을 남기셨다.
그런 용감한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운동도 적당히 하고, 힘들면 바로 쉬기 일쑤였다. 나의 몸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무릎이 별로 안 좋고, 가끔씩 고관절도 아프다는 핑계로 스트레칭에 주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고, 올해는 조금씩 조깅을 시작했다.
어느 날 3km를 걷고, 조깅을 한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뛰려니 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숨을 헐떡이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답게 핀 벚꽃 사진은 덤으로 얻은 보너스였다. 이제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면 되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마침 택배 물량이 있어서 ‘완행열차’가 될 것 같았다. 반대편 엘리베이터는 이제 막 출발한 상태였다.
‘한 번 걸어 올라 볼까?’
갑자기 호기가 생겼다. 참고로 아파트는 37층에 우리 집은 32층에 위치했다. 이 무모한 도전을 왜 하고 싶었는지는 몰랐지만, 약 1초의 고민을 하고 계단을 올랐다. 한 층, 한 층 오르면서 자유(?)를 느끼는 대신, 후회감이 몰려왔다. 8층 정도가 되자, 괜한 호기를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엘리베이터를 탈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조금 이상했다. 중간에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면과 의지 사이에 갈등하는 사이에 어느덧 15층 정도가 되었다.
복도는 소방 안전 법 때문에 깔끔했고, 가끔씩 자전거들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걷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혹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다른 입주민을 만난다면 어떨까? 그것도 약간 창피한 일이었다.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쳤지만,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20층을 지나니 슬슬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속은 여전히 갈등했다. 지금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까? 25층을 지나니 점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혼이 떠난 몸을 움직이니 30층, 마침내 집에 도달했다. 어떤 성취감이 느껴졌지만, 그것보다 일단 목이 말라서 손을 씻고 물을 마셨다. 샤워를 하면서 진정한 행복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물론 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이러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 우선 한 단계씩 밟아나가면 된다. 오늘 100m를 걸었다면 내일은 200m, 그리고 언젠가는 5km를 걷거나 뛸 수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그래도 움직이는 것이 낫다.
중년에 접어들수록 편한 것에 익숙해지고, 스스로 선을 긋게 된다. 이제는 그 선을 지워보는 것이 어떨까?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공부도 그렇고, 다른 자기 계발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림을 그리는 것이 꿈이었다면 지금부터 스케치북에 그림을 기르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하다. 마음의 ‘선’을 지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