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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l 20. 2021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며 느낀 점

누군가 "왜 그렇게 열심히 하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막상 답이 곤궁할 때가 많다.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나요? 왜 그렇게 글을 많이 쓰나요? 왜 그렇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나요? 등등.

물론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기 계발적인 욕구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가 좀 더 정확한 대답인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듣고 왠지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릴 적부터 '미련 곰 딴지'라는 별명이 생긴 것을 보면 일단 무엇을 시작하면 계속하게 된다. 아무리 싫은 일이라도.




십 수년 전에 중학교 친구가 결혼한다고 해서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그 친구가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선생님이 단체기합을 줘서 운동장을 30바퀴 정도 뛰어야 했다. 아이들은 같이 뛰었는데 선생님이 교무실로 돌아가자 대부분 포기하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또는 몇 명만) 계속 뛰었다고 했다. 나중에 친구가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이 안 계시는데 왜 힘들게 뛰니?"

"그냥. 뛰라고 하셨잖아."


나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친구는 그 일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때 친구는, '아, 이 녀석 뭔가 할 놈은 할 놈이겠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묵묵히 운동장을 뛰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정말 웃음도 나고, 고지식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사소하게는, 좋아하는 미용실만 이용하고(헤어디자이너 분이 다른 곳으로 이직할 때까지), 식당도 단골 몇 군데를 정해서 종종 이용하는 편이다. 


자기 계발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어 회화 2급을 따겠다고 3년 동안 매달 시험을 치렀다. 결국 2급을 획득했다.


재즈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서 한 선생님께 레슨을 7년 받았다. 선생님이 이론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실 정도였다. (물론 재즈 이론을 다룬 책을 수십 권 모아서 읽고 공부했다.)


새벽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골프 연습을 하기 위해서 연습장에 나갔다. 


특히 선생님이 너무 이상한 분이어서, 별로 레슨을 받고 싶지 않았다. 툭하면 지각하고, 성격도 고약했다. 하지만 6개월 간 인내하고 배웠다. 그 선생님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까지. 




이렇게 재수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역시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면' 결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시중에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책들이 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할 필요가 없지만, 이러한 것이 습관이 되면 문제다. 그야말로 의지가 너무 쉽게 약해질 수 있다. 미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간'만 살짝 보고, '아이, 맛없네'라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마치 여우가 포도나무를 보고, 그냥 '신포도'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포기하고 싶고, 하기 싫은 일이 많았지만 그냥 했다.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다. 그 분야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3년간 책을 세 권(두 권의 개인저서, 한 권의 공동저서) 내고, 40대가 되기 전에 음악 앨범도 내고, 중국어, 일본어 어학 등급도 획득했다. 골프도 소위 '머리 올리러'(처음 필드 나가는 것을 말함) 나가서 '골프 신동'(?)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꽤 괜찮게 쳤다. 그것도 인고의 6개월을 잘 참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다시 그 선생님께 레슨 받으라면, 무조건 '거절'이다. 이건 신포도가 아니라, '썩은' 포도다.)


이 글을 쓴 이유는 혹시 무언가에 도전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이 말한 것을 보니, 나의 마음과 똑같아서 공감이 갔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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