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는 일을 보고, 이유를 관찰하며,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살핀다면,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사람이 어찌 숨기겠는가?” - 위정爲政 2.10
공자는 사람을 평가하는 측면에서 시視, 관觀, 찰察을 중요시했습니다. 모두 잘 지켜보고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시 → 관 → 찰’로 가면서 그 깊이는 더 해갑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시’는 ‘See’, ‘관’은 ‘Watch’, ‘찰’은 ‘Understand’입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대방을 잘 이해해야겠죠.
단계별로 살펴보시죠. 먼저 ‘시視’입니다. 이는 그 사람이 현재 무엇을 하는지(능력과 업적) 지켜보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상급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항목입니다. 고과를 평가할 때도 가장 많이 적용하는 기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업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객관성이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모를 때는 문제입니다. 구성원을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는 것은 리더의 가장 기본자질입니다.
둘째 ‘관觀’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는 좀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행위입니다. 그 사람이 준수하는 ‘이유’와 ‘원칙’을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명한 사업가인 레이 달리오는 《원칙》이라는 책에서 “원칙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도록 만들어주는 행동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진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원칙은 우리의 행동의 기초를 형성하는 기본입니다.
이러한 한 개인의 원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업무와 능력을 떠나서 삶의 원칙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들어봐야 합니다. 거창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믿는 ‘옳고, 그름’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10년 정도만 해봐도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합니다. 남의 비판이나 칭찬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이 믿는 대로 꾸준히 나아갑니다.
공자도 이인(里仁)편(4.7)에서 “허물을 관찰해보면 곧 인仁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관심을 갖고 상대방을 살펴보면, 그나 그녀가 어떤 원칙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찰察’은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편하게 여기는 것을 헤아린다는 것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제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평소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나의 업적과 공적이 중요해서 구성원들을 단지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살피고 바라본다는 것’은 ‘공감’의 다른 말입니다.
물론 ‘시’를 통해서 사람의 업적과 능력을 파악하고, 상대방을 잘 활용해도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오는 사람들도 있고, 야망을 품은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조직의 문화는 건전하지 못합니다. 이해타산(利害打算)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와해될 수 있습니다.
회사나 조직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잃는다면 조직의 발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대(古代) 이후로 좋은 사람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깁니다.
내가 아닌 남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인 것처럼 상대방도 바라보면 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원칙이 있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배려심이고 이해심입니다.
결국 ‘살피고 바라본다는 것’(시視, 관觀, 찰察)은 ‘공감’의 다른 말입니다.
이제 시대는 변했습니다. 더 이상 고성장(高成長)이 아니고 저성장(低成長)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책에 ‘상실’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잘 어울리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노력해도 예전만큼 성과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 와중에 세상은 5G와 같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서 이제는 사람들의 창의력과 자질이 중요합니다.
ChatGPT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AI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만들어진 알고리즘에 따라서, 사람들의 객관적인 자질을 평가하고, ‘시視’ 정도의 레벨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옆에서 관찰(觀)하고, 이해하는 (察)능력은 아무리 AI의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AI가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책상 뒤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구성원과 대화하고 교류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역시 사람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방송인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오프라 윈프리의 가장 큰 자산은 ‘공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약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리포터로서 활동할 때입니다. 객관적으로 사건 취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너무 공감한 나머지 같이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해서 오프라 윈프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키웠고, 그것이 그녀를 독보적인 위치에 올렸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대할 때 가식적인 태도를 버리고, 진심을 다했고,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던 그 말의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녀는《타이탄의 지혜들》에서 “24년간 일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비결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시視, 관觀, 찰察’은 이렇게 크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요? 상대방을 바라보고, 삶의 원칙이 무엇인지 알고,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가요? 아니면 단지 겉만 바라보고 있는가요?
세상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나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자세는 필요합니다.
지금 내 옆에 사람부터 지켜보도록 하죠. 무관심, 냉정한 평가가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