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추수〉편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름벌레에게 얼음을 설명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선비에게 도를 설명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정와불가이어어해자 구어허야 하충불가이어어빙자 독어시야 곡사불가이어어도자 속어교야)
- 《장자》 〈추수〉편
20여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적어도 주변에 수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까지 치면, 수천여 명) 정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했다. 나도 젊은 시절에 그들의 명석한 두뇌, 뛰어난 말솜씨에 매료되어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존경하는 측면이 있다. 그때 배운 인생의 그리고 일에 대한 철학은 지금도 나에게 유효하다.
그런데 종종 안 좋은 경우를 만나고는 했다. 자신의 역할에 너무 심취한 경우다. 회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직 회사를 위해서 존재한다. 물론 수많은 위대한 경영자는 자신의 온몸을 희생해서, 회사를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그만큼 성과를 거뒀다. 그러한 부분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역할에 빠져서, 마치 회사 = 자신이라고 동일시하면서, 우월의식을 갖고, 동료나 선배, 후배들을 무시하거나 심하게 몰아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회사를 위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들이 일하는 방식은 단지 윗사람들의 기호에 맞춰서 최적화된 업무를 할 뿐이다. 그 나름대로 경쟁력이지만, 실제로 회사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기가헤르츠 급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물론 회사에서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목에 힘도 주고, 많은 이들의 경외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오고 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자신과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옛 추억을 회상할 것이다. 가끔 만나주는 예전 동료나 후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을 하지 않는다면(존경을 한다고 해도, 관계 유지는 쉽지 않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난다는 것
장자는 ‘추수’ 편에서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처음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하면서도 막상 실천을 못한다. 역시 자신의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업무도 될 수 있지만, 보다 큰 의미에서는 나의 ‘업(業)’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사회, 가정, 학계 등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해야 할 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장자의 이야기는 개구리로 끝나지 않는다. 여름벌레가 얼음을 알지 못하는 것도 여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잡혀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도(道)의 의미를 설명해도 기존의 가르침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나의 진정한 업(業)을 이해한다는 것
물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서 돌아간다. 하지만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만약 내가 카페에서 바리스타라면, 나는 바리스타를 통해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떠한 일을 이룰 수 있을지. 커피를 기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물론 매뉴얼이 있지만),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고, 커피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단순한 커피 바리스타가 아니라, 커피의 맛을 느끼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바리스타라면? 그렇다면 나의 직업관, 세계관을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고,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게 되고, 나는 커피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하더라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살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업무에 함몰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거나 또는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와 마찬가지다. 회사 내에는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있고, 업계에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적으로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주어진 나의 역할, OO 부서, OO 부장, 과장, 대리 등이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 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의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회사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큰 스코프에서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그러면 회사를 떠나더라도, 나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다른 분야를 찾아서 일할 수 있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OO 부서, OO라고 한정하다 보면, 그 역할이 사라졌을 때 자칫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방황할 수 있다. 우물을 벗어나고, 바다로 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