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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Oct 16. 2019

[1] 원하는 부서가 아니었지만

이기주의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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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취업에 성공했다.’      


인서울 상위권 대학 졸업이기에 준비만 잘하면 외국계 기업이나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이름 있는 기업에 당당히 입사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학점도 좋고, 토익과 HSK 성적도 있고,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으며, 1년 가까이 휴학계를 내면서 취업 스터디도 지겹도록 했다. 해외 봉사 활동도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며 모은 돈을 써가며 다녀왔다. 아르바이트 역시 그냥 아르바이트도 아니었다. 친척분의 소개로 기업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였던 것이다. 


SNS도 팔로워 숫자를 제법 모았다. 안 해본 기업 서포터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활동해서 표창장까지 여러 번 받았으니. 취업 스터디 멤버들 역시 부러움과 질투를 골고루 섞어가며 나와 함께 스터디를 하는 것에 뿌듯해 하고 있었다. 우리 스터디는 꽤나 소문이 나 있어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릴 정도였다.


누가 봐도 이제는 꽃길만 걷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펙 오브 스펙, 금스펙 느낌이었다. 고생 끝, 아스팔트 무한질주일 거라는 환상 속에서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이력서는 왜 이렇게 잘 써지지? 자소서도 술술 써지는데 이거 아무래도 외국계 기업 가려고 이러는 거 아냐?’ 취업공고문을 보자마자 지원서를 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일사천리. 정말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인가보다 싶었다. 


잠들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다른 취업공고문을 여유 있게 살필 수 있었다. 내일은 이곳에 지원해봐야겠다. 한껏 미소 지을 만한 기분에 취해 있었다. 굳이 향수를 뿌릴 필요도 없을 만큼 강렬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났다. 새로운 이력서를 썼다. 대기업에 보낼 이력서였다. 이틀이 지났다. 또 새로운 이력서를 썼다. 다른 외국계 기업에 보낼 이력서였다. 3일이 지났다. 그리고는 4일, 5일…. 날짜는 계속 규칙적으로 쉼 없이 흘러갔다. 그 와중에 정말 로봇처럼 계속 이력서를 써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력서를 쓸 기분이 아니었다.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 왔어야 하는데.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와야 하는데 왜 안 오는 거지?’


하루가 지나 쓴 이력서에 대한 답도, 이틀째 쓴 이력서에 대한 답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함흥차사. 이번에는 이 사자성어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아무런 소식이 없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력서를 써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또 떨어지면 어쩌지. 1차 통과도 못하는 나날이 계속 되면 어쩌지. 


취업 스터디 및 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에도 두려웠다.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너는 어디 좋은 데 합격했냐?’라고 물어볼까봐.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카톡 하나 보내서 물어보는 것이 이렇게나 두려울지 몰랐다. 그들이 자꾸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것만 같았다. 초조함과 불안감은 자꾸 엄습해 와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이런 버릇이 생긴 거지?’ 써야 했다. 이력서를. 자소서를. 누군가 귓가에 계속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께서 노크를 하셨다. 속삭임이 사라졌다. “아들, 저녁 먹어야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저 밥 한 술 뜨는 것조차 의미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슴이 자꾸 쿵쾅쿵쾅 거렸다. 대답이 없는 나의 무반응이 걱정되셨는지 어머니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리셨다. “드르륵.” 그 소리가 왜 그렇게도 크게 들리는지. 하늘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혹시나 자고 있나 해서 문 열어봤어. 저녁 먹어야지. 괜찮니?” “저녁 생각 없어요. 이거 좀 더 쓰고 제가 알아서 챙겨먹을게요.” “그래. 먹을 거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 꼭 먹어라. 요새 얼굴이 헬쓱하네. 엄마는 늘 아들 편인 거 알지?” 아는데도 그다지 힘이 되지 않는 말 같아서 미안함과 동시에 슬픔이 또 몰아쳤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정말 많이 썼다. 책 한 권 출간해도 충분한 양이었을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왜 이렇게 나를 찾는 회사가 없는 거지. 회사에 들어가서 내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냥 규칙적으로 출근해서 앉고 규칙적으로 퇴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뿐인데. 아니다. 불규칙적이어도 상관없다. 이렇게 회사들이 많은데. 이렇게 취업공고문이 많이 올라오는데. 내 눈이 너무 높은 걸까? 그런데 처음에 제대로 잘 들어가지 못하면 나중에 고생일 건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아야 할까, 아니면 눈높이를 낮추어야 할까.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금 모니터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눈이 뻑뻑해지고 아플 지경이었다. 너무 많이 썼다. 너무 많이 보냈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취업은 희망고문이란 말인가. 대입은 희망이었는데. ‘나는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것이었을까? 삶뿐만 아니라 취업에도 레벨이 있다는 건가?’ 누군가 또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이력서를 또다시 써내려갔다.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자소서도 써야 했다.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며칠이 지났다. 방 커튼 열기가 싫어서 며칠째 계속 어둑어둑하게 생활해서인지 몇 시인지조차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아침이겠지 물론. 꼴 보기조차 싫은 햇살이 저만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 또 이력서 써야 하잖아.’

스마트폰에 문자가 와 있었다. ‘1차 합격.’ 덤덤했다. 면접을 보았다. ‘2차 합격.’ 그러려니 했다. 심층면접을 보았다. ‘3차 합격.’ 갑갑함이 더해졌다. 임원면접을 보았다. ‘최종 합격.’ 그랬다. 나는 합격을 했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패배자의 늪에서 겨우 건져 올려진 것만 같았다. 더불어 내가 꼭 가고 싶어서 책상 앞에 붙여두었던 기업들 이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합격은 합격이었다. 


부서 배치도 확인했다. 생각조차 못하던 부서였다. ‘왜 내가 저 부서로?’ 합격자는 총 5명. 나머지 4명에게는 원하는 취업이었을까? 아니면 원하는 부서에 배치가 되었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이 회사를 다닐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들어보니 2명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만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아니었다. 취업준비생들도 회사를 고르고 있었다. ‘무한경쟁사회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말은 팩트체크를 넘어 팩트폭격이었다.




세렝게티의 먹이사슬 순서가 취업 첫 날부터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가장 아래쪽에 있을 것이다. 긴장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마구 뒤섞이면서 회사 정문을 통과했다. 내가 근무할 부서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기만 했다. 입구에서도, 저 안쪽, 여러 부서를 지나칠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 ‘신입사원이 온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바쁘게 지나다니는 누군가와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찰나에 고개를 들고는 얼른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오늘 첫 출근이라며 신입사원의 부서는 어딘지 물어보기에도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 날이 시작되었다.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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