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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Oct 22. 2019

[2] “어, 나 은근 샐러리맨 체질인가봐!"

이 회사로 출근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더 좋은 회사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미 이력서를 제출했던 다른 기업의 연락을 기다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딱히 연락이 없었다. 그나마 왔던 연락은 ‘불합격 통지’. 여전히 내게 희망고문만 끊임없이 안겨주고 있었다. 면접 보러 달려갈 준비를 일주일 내내 하고 있었는데 출발 스타트조차 끊질 못했다. 이제는 할 일도 없을 터. 포기가 빨라야 인생이 편할 텐데. 


‘내가 못 들어가면 누가 과연 들어갔단 말인가’ 하는 자조 섞인 푸념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끊었다고 자부했던 담배마저 무의식 중에 피고 있었다. 나보다 1년 정도 먼저 입사한 선배와 함께. 선배는 늘 부서에서는 파이팅을 외치지만 담배 피러 나올 때는 말이 없었다. ‘나와 똑같은 심정일까? 아니면 일이 너무 많아 지쳐버린 것일까? 1년 만에?’ 그러고 보니 입사하고 한 달도 안 되어 잠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사실 한 달이면 다행이다 싶긴 했다. 3일 만에 사라져버린 누군가도 있었다고 한다. 너무 금방 사라져버려 모두에게 그냥 ‘누군가’로 불린다. 전설처럼 암암리에 퍼지는 영웅의 미담같이. 과장급 이상은 역시나 “요즘 것들은 말이야”이라며 ‘누군가’를 험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선배는 부서로 돌아오자마자 웃는 얼굴로 변해버린다. 연기자가 따로 없다. 배우를 했어야 하는데 왜 직장인이 되었을까 싶을 정도다. 순식간에 바뀌어버리는 포커페이스. 부서로 들어올 때면 정확히 눈을 마주치게 되는 자리에 박 차장이 앉아 있기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다. ‘허걱.’ 들어올 때마다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수깨끼를 내어서 못 맞추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인다는 이집트의 스핑크스처럼 살벌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그가 샐러리맨은 늘 웃으며 생활해야 하루가 활기차다며 아침부터 강조를 하는 통에 ‘억지웃음’ 연습을 매일 아침 모두가 하곤 했다. 그래서 다들 책상 위에 작은 거울들이 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는 아침부터 체조까지 했다고 한다. 구령소리를 내는 바람에 참다못한 옆 부서에서 항의가 들어와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개인의 개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박 차장이었다. 배려조차 없는 박 차장이었다. 누구는 회사의 이익을 목표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개성은 없애야 한다며 강조했다. 다른 누구는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러한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는 것이냐며 전면 반박하기도 했다. 여하튼 난 이러저러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부서에 와 있다. 벌써 일주일째. 




학교 다닐 때는, 취업 스터디 할 때는 아이디어도 뛰어나고 리더십도 있다고 다들 좋아한 나였는데, 이곳에서 나는 그냥 ‘원 오브 뎀’이었다. 눈치만 늘어가기 시작했다. 박 차장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하는 생활에 나의 일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임원 회의가 퇴근 시간에 가까워질 때 자주 있어서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매일 아홉 시는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52시간은 꿈도 꾸지 못할 터. 일 52시간이 아니면 다행이다 싶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조직의 일원으로 일주일을 버텨냈다. 기억나는 일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복사하기, 생수통 갈기, 택배 보내기 등등. ‘아, 맞다. 스마일 연습이 있었지. 제일 중요한 그거. 그래도 커피 안 타는 게 어디야.’ 그렇게 잘이든 아니든 견뎌냈다. 그러고는 퇴근 중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 나 은근 샐러리맨 체질인가봐.” 내일은 두 번째 맞이하는 월요일이었다.      




계란이 새로 변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계란이 계란인 채로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계란과 같다. 그리고 당신은 그냥 계속 평범하고 상하지 않은 계란으로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부화하거나 상할 수밖에 없다.  - C. S. 루이스(C. S. Lewis)     



《나니아 연대기》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기독교 사상가이자 작가인 C. S. 루이스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목사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호수와 언덕이 보이고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집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온 그는 형과 함께 다락방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문학 소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루이스 형제에게는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바로 엄지손가락 관절이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들 형제 중 C. S. 루이스는 집이나 배를 만들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접고 글쓰기의 기쁨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신체적 결함이 그의 문학적 재능을 키우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깨달았을 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의 방향성을 바꾸어보면 다른 쪽으로 더 나은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절이 하나뿐이었다고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 떠난 후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날린 루이스처럼 우리의 삶도 ‘Plan B’를 잘 짜서 새로운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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