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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Oct 28. 2019

[3] 5분 일찍 출근하기 Vs. 5분 지각하기

대학교 4학년 졸업이라는 표현은 이제 왠지 촌스럽게 느껴진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 전쟁, 묻지 마 취업 같은 표현들로 설명되면서 5학년, 6학년을 가뿐히 넘어서는 잔류자들이 대학교마다 넘쳐난다. 아무래도 졸업자보다는 재학생 신분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졸업을 앞두고, 더불어 취업 스터디를 한창 하면서 불안감이 폭발하여 불면증에 시달렸다. 취직을 못 해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강박증까지 함께 몰아쳤다. ‘아, 이렇게까지 했는데 빈둥대기만 하면서 살면 어쩌지.’ ‘원하는 대기업에 취업해야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선후배들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과연 무엇을 위해 취업을 하는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움만 더욱 커졌다. 그러한 마음이 불면증과 강박증으로 이어졌나보다. 


그런데 여하튼 원했던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취업을 하고보니 불면증과 강박증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눈칫밥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고,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의 표정 하나하나가 매순간 신경 쓰였고, 그들이 부르면 칼같이 답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 더. 피곤함이 매일 극에 달했기에 집에 도착하면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아침 5분이 정말 목숨같이 느껴졌다. 스마트폰, 자명종, 시계까지 총 3개의 알람이 1분 간격으로 울려도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듯 이불을 시원스레 걷어차는 것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알람이 순서대로 울리면 울릴수록 이불 속을 더 깊게 파고들고 뱀이 똬리를 틀 듯 꼬아대기 시작했다. ‘아, 출근하기 싫어. 너무 싫어. 죽을 거 같이 싫어. 싫어, 싫어, 싫어증.’


매번 5분 지각할 때마다 눈치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쌓여만 간다. 윗분들이 마음속으로 뭐라고 할지 머릿속에 그려져서인지 불안감을 잔뜩 안고서 겨우겨우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저 자리 하나 내게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저 자리가 왜 이렇게나 전기의자 같은지 모르겠다. 


눈치의 순서가 차장님부터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1년 위 이 선배가 카톡으로 잽싸게 연락을 해온다. ‘자꾸 지각하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요새 분위기도 안 좋은데. 그 5분 빨리 오는 게 쉽지 않은 거 잘 알지만 오늘 회의 때 분명 얘기 나올 거란 말이에요. 눈치껏 해주세요, 제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랬다. 내가 뭔가 조금 센스 있게 잘하면 자기들이 잘 가르쳐서 그런 거라고 으스대듯 말하면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란다. 덧붙여 다른 신입사원은 잘한다는데 우리 부서 신입사원은 왜 그런지 모르겠단다. 정말 냉정하다 못해 칼 같은 곳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심해야지. 그런데 너무 힘들단 말이야. 군대도 아니고, 정말. 아직 적응도 안 되고 있는데.’ 




회의가 소집되었다. 부서 실적과 앞으로의 전망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지나가고나니 신입사원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박 차장이 일장연설을 꺼내기 시작한다.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신입사원들이 진저리치도록 싫어하는 말) 아침 9시까지 출근이라고 회사에서 이야기하면 7시 반, 아니 최소한 8시까지는 나왔어. (끊임없이 기분 나쁘게 반말을 하는 박 차장) 그런데 요즘 애들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본인은 능력이 안 되어 일찍이라도 나오고 회사에서 거의 제일 마지막에 퇴근해서 그나마 차장이라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칼 출근에, 칼 퇴근이라니. 말도 안 돼.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그건 아니지. 바로 윗 선배들이 좀 잘 챙겨. 회사에서 말 안 나오게.”

어찌 보면 끔찍하기 그지없는 꼰대 스타일이라는 게 확실히 드러난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왜 윗분들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박 차장 나이대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아픔을 삭이던 나이대인 것 같기도 하다. 소위 말하는 IMF 세대가 아니던가. 워낙 나는 어릴 때 몰아닥친 태풍 같은 사건이라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 삼촌, 이모, 부모님 세대가 겪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 


직장도 마찬가지였겠지. 영원한 정직원이 보장되던 세상이 지나가고, 언제든지 능력과 상황에 따라 퇴사라는 서슬 퍼런 칼이 대기하고 있던 세대의 중심에 서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박 차장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 정말 못해도 9시까지는 출근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지켜야 할 의무들을 완수하지 못하면서 권리만 내세우는 것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아닐뿐더러, 직장인의 기본자세도 아닌 것이겠지.


그나저나 회의 때 워낙에 박 차장에게 한마디 듣고서 정신이 어질어질했는데, 회의 끝나고 나니 선배는 담배 피러가자는 핑계를 대고서는 몇 마디 잔소리를 꺼낸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포커페이스 같은 사람인데, 그래도 괜히 자신까지 피해당하는 거 같아서 싫기는 하나보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너무 당했더니 오늘도 여전히 힘든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은 슬픔은 몰아친다. 그런데 내일부터 아침 일찍 어떻게 일어난담? 정말 딱 5분인데. 자기계발의 대가들은 하루 5분을 일주일간 모으면, 한 달을 모으면, 1년을 모으면 이러면서 나의 숨통을 조여 오겠지. 모두가 그렇게 살았더라면 세상 모두가 마에스트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 평범한 일반인인데 말이다. 정말 일반인들을 위한 5분 일찍 일어나기 방법은 없단 말인가.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도 하더라. 정말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 잠 들 때도 행복하겠지만 그렇게 그 생각을 아침부터 하고 싶어서 눈이 번쩍 뜨인다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가슴 뛰는 무엇인지 찾질 못하겠다. 다른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정말 멋진 연애를 해보는 거야. 땡. 아침에 일어나려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너무 어불성설이다. 


그래. 그냥 다른 알람을 사는 편이 낫겠다. 정확하게 끌 때까지 마구 도망 다니는 알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알람을 사야겠다. 더없이 현실적일 것이다. 아, 5분 늦잠 자는 것과 5분 일찍 출근하는 것 사이에는 10분이라는 거리가 있는데 왜 이렇게나 평생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벌써 11시 50분이다. 박 차장 이하 부서 모두 모시고 오늘은 어디로 식사하러 가야 하나. 다녀와서 알람이나 눈치껏 찾아봐야겠다.      


     



지금의 시대도, 언제나 그렇듯 아주 훌륭한 시대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알고 있다면.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7대에 걸쳐 성직을 이어온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난 랄프 왈도 에머슨. 1826년 하버드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1829년 보스턴 제2교회의 목사가 되었으나, 종교에 대한 그의 자유스러운 입장에 교회가 반발하여 1832년 사임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이유로 에머슨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교회를 떠나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1838년에는 모교인 하버드 신학대에서 한 연설 때문에 30년간 하버드대에서 환영받지 못한 동문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행동하고, 교인들의 영혼을 옥죄며, 교리만을 강조한다’고 교회를 비난했던 것이다. 


결국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비난으로 고통스러웠을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에머슨처럼 오늘날 우리 역시 지식과 지혜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신념을 갖고 행동할 때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미국적인 개인주의의 발생을 이야기할 때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유지했던 에머슨의 행동은 그러한 자신만의 사상을 쌓아가는 데 커다란 주춧돌이 되었던 것이다.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자신을 다스리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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