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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07. 2019

[5] 일과 결혼하려는 당신의 이중심리

인정받는 미생의 디테일한 습관

TV에서 참 많이도 이 단어를 들었다. 일중독, 즉 워커홀릭. 일이 너무 좋아서 환장할 것만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인 줄만 알았다. 번아웃, 우울증 이런 단어들과 연결 짓는 기사들도 제법 많이 보아서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동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우물을 열심히를 넘어서 미친 듯이 팠더니 성공했다고 하는 성공 스토리처럼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마침내 깨달았다. 일이 너무 많아서 워커홀릭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였던 것이다.  


최근 주 52시간을 보장받으려는 직장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칼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숱하게 나왔다. 퇴근 후 취미생활도 누리고, 집에 일찍 돌아가 가족과 오붓하고도 단란한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다양한 편법이 존재했다. 




우리 회사에도 그 편법이 공공연하게 당연시되고 있었다. 6시가 되면 팀마다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저기 입구에서부터 착착착 소리를 내며 형광등이 소등된다. 하지만 그때부터 누군가는 책상 위 스탠드를 켜느라 분주하다. 모두의 책상에 모두의 스탠드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아, 이렇게 하면 눈 나빠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일은 많고 일은 해야 하고, 내일도 일은 있으니까. 


누군가는 집으로 일거리를 싸 짊어지고 간다. 집에서는 집중이 잘되지 않으니 독서실이나, 동네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물결도 보인다. 차라리 이곳에서 하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순간적으로 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이곳에서 6시 이후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일을 다 끝마쳤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차장님은 6시 퇴근과 동시에 과장님한테 일거리를 넘겨주고 가버렸으니 이거야 원.’ 




그랬다. 직장인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반자발적으로 일과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완전 강제 결혼이었다. 누가 강제 결혼을 좋아하겠는가. 상대가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으니 말이다. 저녁밥은 못 먹어도 야근은 먹어야 하는 세상. 오히려 낮에 열심히 일해 놓는 것이 비효율적인 행동이라고 눈치 받는 세상. 그런 부조리는 얼른 사라져야 할 텐데 말이다. 


이런 씁쓸한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보려는데 일찍이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던 취업 스터디 멤버에게서 카톡이 왔다. 괜히 열등감 아닌 열등감이 생겨서 그동안 피했는데 이제는 취업도 했겠다, 딱히 피할 이유는 없었다. 찜찜하긴 해도 뭐 굳이 피할 것까지야. 그런데 또다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취뽀(취업 뽀개기)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몇 번 연락드렸었는데 바쁘셨는지 답이 없어서요. 이번에 스터디 멤버들끼리 가까운 동남아 여행 계획할까 싶은데 함께하셨으면 해서요. 그래도 덕분에 외국계 기업 취업까지 된 거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 커서 여행 가서 크게 한 턱 쏠까 싶어서요. 괜찮으시면 답 주세요.’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텐데 외국계 기업이라고, 대놓고 휴가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어차피 다른 사람들 상황 뻔히 알면서. 이래서 대학교 입학 후, 취업 후, 결혼 후에 인맥이 갈라지는 것인가 싶었다. 정말로 끼리끼리 놀아야 한다는 말이 진리인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눈치 야근으로 밥도 못 먹고 있는데, 휴가라니. 그러고 보니 몇 개월 후에 휴가일 텐데 며칠이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입사원이라 여유롭게 쓰진 못할 테니 그냥 며칠 집에서 쉰다는 생각이 속 편할 것만 같았다. 




어차피 더 연락할 일이 없을 듯하여 카톡을 ‘읽씹’해버렸다. 이해하겠지. 어떤 의미인지. 차라리 이럴 때는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 속 편하다. 말로 하다보면 얼버무리기도 힘든데 말이다. 나랑 같이 입사한 다른 팀 신입들은 열심히 잘하고 있으려나. 혹시나 벌써 그만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니려나. 


누군가는 이렇게 행동하는 90년대 생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90년대 생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 옛적 X세대도, Y세대도, 밀레니엄 세대도, 오렌지족도 다들 그 당시 자신들이 최고라며, 시대 흐름의 중심이라고 으스대었을 뿐 결국 그들도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과 영혼을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굳이 세대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눈치껏 편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이 무엇인지 재빨리 파악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일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 나는 언제쯤 칼퇴를 하고자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까? 뭔가 대단한 성과를 올린 후 든든하게 인정받고나면 가능하려나? 그러려면 몇 년 차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90년대 생의 오기라는 생각에 다들 혀를 차더라도 이해하려나. 혹시 모르니 다른 신입들 동태도 좀 파악해야겠다. 나만 너무 튈 수는 없으니. 그런데 왜 우린 단카방이 없는 거야? 개인주의적인 삶은 편하기도 하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휴, 이런 철없는 소리 마시길. 뭐가 잘하는 건지 잘 모르니까 문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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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이 별로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일들을 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 마하트마 간디     


가난한 탁발승일 뿐. 가진 것이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하지 않은 평판이라고 말했던 인도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마하트마 간디. 1999년 <뉴욕타임스>가 지난 1,000년의 인류 역사 중 최고의 혁명으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을 선택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런 그도 자신이 하는 일이 남들이 보기에 별로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한다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이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감과 의구심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그 일을 바로 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로 평가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을 바꾼다는 것, 아니 가장 가깝게는 나를 바꾼다는 것은 밀알 같은 사소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그 믿음이 커지고 커져서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그리고 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우직하게 믿음을 갖고서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 분야에서 마에스트로, 즉 장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내려 가다보면 언젠가는 샘솟는 물줄기를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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