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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Nov 15. 2019

[9] 박카스라도 건네면 다행이지

인정받는 미생의 디테일한 습관

퇴근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일은 많은데 끝이 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옆자리가 비어서 신입 직원이나 채용해주었으면 하는데 갑자기 6시가 되니 팀장님은 자양강장제를 꺼내고서 미안함을 표시하며 마시고 일하라고 팀원들을 격려한다.


내 사무실의 모습이 아니다. 박카스 CF 속 모습이다. 주 52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야근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의 애환이 그려진다. 더불어 직원을 계속 채용하지 못하는 회사의 어려움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으로 보면 씁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트 있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CF 속 팀장님은 미안한 마음에 박카스라도 건네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 결국 TV 속 세상은 더없이 격한 비현실 판타지였단 말인가.’ 6시가 지났는데 딱히 가려고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사무실 전체 불을 끄니 마니 하면서 협박하는 듯한 메시지로 직원들을 문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매년 초 각 팀이 1년치 매출을 예측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초과 달성한 팀이야 당연한 ‘칼퇴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겠지만 차장님의 자리가 여전히 덩그러니 비어 있어서 뒤숭숭한 우리 팀에 그러한 여유는 진정한 사치일 뿐이다. 사치도 최고급 명품 사치. 과장님은 워낙에 말이 없는 성격이라 좋게 말하면 팀원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별 관심이 없는 것만 같다. 사실 본인이 워낙에 윗사람에게 들들 볶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원들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싶기는 한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여하튼 잘 모르겠다. 워낙에 포커페이스를 하고 계신 분인 듯싶으니까. 


그나마 사람끼리의 정이라고 CF처럼 자양강장제라도 하나 건네주시면 좀 힘을 내볼까 했는데 그런 건 정말 언감생심.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다시금 먹고서 자리에 앉는다. 내 윗자리 전등은 소등되었다. 그리고는 뭔가 하늘의 별들이 순식간에 반짝거리듯, 아니면 가로등이 열 맞춰 점등하듯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슬쩍 고개를 들어 다른 팀을 둘러보면 역시나 불빛이 햇볕 못지않게 새어나오는 팀이 있는가 하면,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팀도 있다. 공포영화에서는 어둠이 짙게 깔리면 비명을 지를 만한 무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올 텐데 우리 층에서는 부러움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좋겠다. 부러워.’




이 시점에서 괜히 왜 야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왜 야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첫째, 난 오늘 더 할 일이 없는데 과장님이 퇴근을 안 하고 있다. 둘째, 과장님은 퇴근 안 하고 있는데 대리님도 안 하고 있다. 셋째, 대리님도 안 하고 있는데 바로 위 선배도 안 하고 있다. 넷째, 선배도 안 하고 있는데 건너 팀도 안 하고 있다. 다섯째, 그냥 다들 안 하고 있으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나도 안 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만 나올 뿐이다. 뭔가 뫼비우스의 띠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늘 반복되는 모습이다. 나에게 아직 큰 일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크게 할 일이 없으면 퇴근하는 것이 맞을 텐데 왜 위에서 안 한다고 나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빠르게 포기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 여하튼 그렇다. 유독 퇴근시간만 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해진다. 




야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옛날 분들도 다 알고 계셨는데 왜 오늘날에는 이리도 모른단 말인가. 먼저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셨다.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갈릴레오도 말씀하셨다. “그래도 야근은 싫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외쳤다. “내 사전에 야근이란 없다.” 맥아더 장군의 말씀도 새겨들을 만하다. “나는 퇴근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절실한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첫 번째 소원은 퇴근이요, 두 번째 세 번째 소원도 퇴근이다.” 


괜히 할 것이 별로 없어서 인터넷 검색만 하다 보니 이런 씁쓸한 명언 패러디 유머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갑자기 과장님이 내 뒤에서 등을 톡톡 두드리신다. ‘으악, 깜짝이야. 그런데 혹시 내가 인터넷 검색이나 한다고 뭐라고 하시려는 것은 아닐까?’ 심장이 쫄깃쫄깃 두근반, 세근반 중인데 잠깐 휴게실로 오라고 하신다. ‘아, 어쩌지. 큰일 났네.’




“자네 오늘은 일 없으면 퇴근해. 내가 먼저 말해서 보냈어야 하는데 미안해. 내가 할 일이 많다 보니 신경을 못 썼네.”


“아닙니다. 다들 가실 때 맞춰 나갈까 싶… 었… 습… 니… 다.”


“입사한 지 몇 달 됐더라. 이제 팀 내 프로젝트를 함께할 정도는 되려나 싶어. 내일부터는 내가 프로젝트 관련해서 기본적인 사항들이라도 좀 챙길 테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 7시가 다 되어가니 일찍도 아니지만, 여하튼 어서 들어가서 쉬어.”


“네… 알겠습니다.”




휴게실로 부르셔서 걱정도 했지만 별 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런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팀 업무에 함께하자고 하시니 괜히 긴장되기도 하고, 뭔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회사 들어와서 과장님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걸었던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뭔가 시작도 전에 인정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뜰 것이고, 그 해가 나에게만 비출 것만 같다. 어떠한 상황이냐에 따라 이렇게 나의 마음은 간사하다니 말이다. 쭈뼛쭈뼛 휴게실에서 나와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간단하게 짐을 싸고 과장님, 대리님, 선배에게 인사하고 퇴근을 했다. 선배의 날카로우면서도 부러운 눈빛이 뒤통수를 따갑게 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과장님이 퇴근해도 좋다고 했으니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내일부터 나는 어떠한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고. 온갖 감정이 뒤섞이고 엉켜 있지만 우선은 퇴근에만 집중하자. 이것에만 집중하기에도 남은 시간이 벅차오른다. 얼른 가서 미드나 열심히 챙겨봐야지. 새로운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 더없이 바빠지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누리는 짧은 행복을 마음껏 누려야지. 내일의 태양은 내일 떠오를 테니 오늘 굳이 걱정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이 말, 누가 했던 거 같은데 누가 했더라. 내가 했던가. 그 어느 때보다 회사 정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만 하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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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높은 이상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쉬지 않고 일하는 개미떼와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 헤겔(1770~1831)     


독일 남서부 지역에 위치했던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수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던 헤겔은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태어난 해에 ‘질풍노도 운동’이, 학생 시절에는 ‘미국 독립 선언’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며, 장년기에는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유럽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말년에는 ‘프랑스 7월 혁명’이 발발하여 자유와 보수의 혼란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그러한 대혼란의 시기에서 헤겔은 오히려 시대의 본질을 고민하고 발견하였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헤겔은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써서 자신의 하루를 꼼꼼하게 정리했으며, 읽은 책은 색인표를 만들어 다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분류해놓았다. 자료를 정리하고 본질을 찾아 고민하고 헤매는 그의 삶 및 연구 방식을 통해 철학자의 자질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목사가 되지 않고 철학을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칸트가 9년 넘게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것처럼 그 역시 약 7년간 프랑크푸르트와 스위스를 돌며 가정교사 생활을 했고, 소위 말하는 혹독한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이겨낸 이 철학자는 현실로 나타난 무질서를 비판하며 언제나 사건이나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앞서 적어둔 그의 명언 역시 이러한 본질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헤겔이라 하면 변증법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정(긍정)-반(부정)-합(부정의 부정)의 형식은 진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발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 더 본질에 접근하려는 그의 열정과 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훗날 프로이센의 국가 철학자이자 최고의 학자로 대접받는다. 더불어 생전에 ‘철학자로 태어나다니, 신의 저주를 받은 거야’라는 농담을 자주했다고 한다. 


현대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는 혼란한 시대의 가운데에서 시대와 삶의 본질을 찾고자 애쓴 축복받은 학자이지만 동시에 후대 철학자들은 그의 난해한 문체와 방대한 저작들과 오늘도 힘들게 씨름해야 하기에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그는 묘하고도 매력적인 철학자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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