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미안합니다, 나도 페미니즘은 처음이어서

인정받는 미생의 디테일한 습관

by Jeremy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약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회는 점점 개개인의 아픔과 상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참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사실 나는 남녀의 구분 자체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왔다. TV에서 가끔 “여자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대화가 낯설게 느껴지곤 했다.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어디서 감히 네가…”라고 말하는 편이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생각은 건너 팀에 부장님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곤 했다. 솔직히 옛날 분이시긴 하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개념 자체가 모호했을 것이다. 유교 사상을 뿌리에 두고서 남자가 대우받고 사회를 이끈다고 확신하던 때가 아니던가. 갑작스런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기에는 힘들 수 있다.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봤을 때 분명히 틀린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노력해야 한다. ‘아, 이러한 행동이 사실 나는 틀린 것이었구나’라고 깨달아야 할 텐데 부장님은 아직 그 깨달음의 길로 가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무리 과장이라고 해도 말이야. 여자가 그렇게 대들고 난리 피워도 되는 거야?”

“여직원이라면 파워포인트 정리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거 아냐?”

“임 대리, 자네가 대신 좀 들어줘. 무거운 거 들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겠어.”


부장님이 우리 층의 모든 팀이 들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이 세 문장은 분명 틀렸다. 부장님이 잘못했으니 난리를 피운 것일 테고 그렇게 난리 피운 것에 대해서만 지적해야지 여자든 남자든 구분하는 것은 분명히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파워포인트에 관련된 멘트도 문제가 있다. 왜 여직원이니까 더 깔끔하게 해야 한다고 고정관념을 갖고 계신 것일까? 역시나 이는 잘못된 발언이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것을 옮기는 문제를 누군가는 아리송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남자니까 좀 들어주라고. 한 편으로 보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도 분명 들 수 있으니 옮기려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과도한 오지랖일 수도, 참견일 수도 있다.


평등이라는 관점은 사실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일정 부분은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올바른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너무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조심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임원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교육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무지했던 사실을 깨우치고 이해해나가는 데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장님은 여전히 그러한 관습이 남아 있는 듯하여 씁쓸했다. 그런데 큰 사건이 벌어질 뻔했다. 역시나 나 대리님이 그 중심에 있었다. 과장님 대신 부장님께 결제 받으러 가신 그 상황이었다.


“나 대리. 그 팀에 남자들만 넷 있는데 너무 사람 잡는 거 아냐? 남자들이 버텨내겠어? 아무리 팀 효율이나 성과도 중요하지만 말이야.”

“….”

“좀 쉬엄쉬엄해. 집에서도 그렇게 남편 들들 볶는 건 아니겠지? 집에서 하는 거 그대로 하는 거 아냐?”

“부장님. 그거 위험한 발언인 거 아시죠? 최근에 교육도 많이 받으신다고 들었는데 그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신가요. 제가 수출입팀에 놀러온 것도 아니고 일하러온 건데 집에서 하는 일이랑 이것도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함부로 말씀하시면 크게 다치십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냥 농담한 거 가지고. 미안해, 미안해. 결제 받았으면 어서 그냥 가. 괜히 생사람 잡고 난리야. 어서 가.”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대화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자체로 농담으로 치부하고 여자 직원들은 불쾌함만 갖고서 계속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차별과 불편함을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하지만 변하고 있다. 이제 임원들 책상 위 책꽂이에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몇 권 꽂혀 있고, ‘OO년생’이라는 문구가 붙은 책도 있었다. 사내 임원 필독서였다.


그들이 사소하다고 여겨왔던 문제는 회사 전체의 이미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타 회사에서는 소송 이야기마저 숱하게 불거졌다고 소문으로 들었다. 다행히 우리 회사에서는 그러한 상황에까지 접어들지는 않았다. 모두가 조심하고 모두가 신경을 썼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이 되겠지. 역시나 숨을 쉬는 것처럼 말이다.


부장님의 발언은 역시나 문제가 크지만, 한 순간에 세상이 뒤집어지듯 바뀌진 않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 자리에서 사과는 했으며 더 이상의 실수는 생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건 시나브로 변해야 할 문제는 아닐 테니 말이다. 사내에서는 페미니즘을 논하기 전에 똑같이 입사해서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같은 직원으로서 대우하고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풍토가 굳어질 때 회사의 이미지 및 생산성이 크게 오르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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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틀어 익명이란 여성을 뜻했다. - 버지니아 울프


여성에게 최초의 선거권이 주어진 나라는 뉴질랜드였으며 그 일은 1893년에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은 1920년, 미국은 1928년에 시행되었고, 한국에서는 1948년에 남녀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참정권이 보장되었다고 해서 평등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을 들여다본다면 아직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사항이 존재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은 모더니즘과 함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어김없이 함께한다. 더불어 그녀의 소설보다 더 사랑받고 있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이렇게 시작을 알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라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1929년에 출간된 지 약 9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접근해본다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이러한 발언 자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체로 남성은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여성은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남녀의 문제는 어쩌면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휴머니즘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결국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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