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첫 문장이나 주제로 글쓰기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A는 자신의 주치의인 나에게 물었다.
나는 커튼을 친 창문을 보는 A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A는 커튼이 아니라 창문 너머, 자신이 있는 공간을 보는 듯했다.
A는 다시 말을 한다.
"끝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는 건 배려일까요?
신이 있다면 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제 끝을 알게 했을까요?"
나는 여전히 커튼을 행복하게 쳐다보고 있는 A를 보며 생각했다.
'반드시 말을 해야 해. 무슨 말이라도 말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A를 쳐다보지 않고, 평소인 것처럼 행동하며 말을 꺼낸다.
"아무도 몰라. 끝인지 아닌지. 그러고 끝이라고 말할 수 없어.
모든 건 말이야,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거든."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A에게 옮긴다.
A는 밝게 웃으며 B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세요. 늘 응원해 주니까요! 맞아요, 끝을 알 수 없겠죠."
나는 웃음에 화답하듯 웃으며 손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러고는 바로 내 개인실로 가서 다시 진단서를 꺼낸다.
A는 아직 11살이지만, 뇌종양으로 2개월이 남았다.
내가 하는 것은 치료와 수술이지만,
성공 확률이 2%라는 사실은 날 무능하게 만든다.
끝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은 늘 더럽다.
저번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최 할머니가
웃으며 귤이 시다고 짜증 내며 나한테도 줬을 때,
나보다 더 멋있었다.
무능한 나에게 아픔을 참고 위로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게 환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가져갈 수는 없을까?
이제 귤이 달아진 12월에, 첫눈이 오는 날
끝을 알고 있는 A의 삶에 조금이라도 달라지길 바란다.
시간은 흘렀다. 눈이 익숙해질 만큼.
이제 A의 수술에 들어간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A의 삶의 연장선을, 나만큼은 기대해야 한다.
긴장된다.
내가 2%를 이뤄낼 수 있다고 계속 생각해야 한다.
A는 환자복을 입고 마취에 들어가기 전에 힘겹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다.
"선생님, 마취하니까 안 아프겠죠? 다음에 같이 눈사람 만들어요. 눈 많이 오잖아요."
어쩜 저렇게 강인하고 사랑스러울까?
커튼 너머에 본 것이 원망이 아니라 일상이라니.
"꼭 그러자. 오늘만 힘내면 눈사람도 만들고, 여름에 모래성도 쌓을 수 있어."
A는 웃는다.
A의 부모님들도 꼭 그러자고 말하며 힘겹게 웃는다.
모두가 행복을 꿈꾸는 순간인데, 너무나 슬프다.
수술에 들어간다. 붉은 불이 켜진다.
난 할 수 있다.
A에게 겨울이 아닌 여름마저 줄 수 있다. 반드시.
6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나는 쓰러질 것 같지만,
나와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A의 부모님에게 말한다.
"수술 성공했습니다. A도, 부모님들도 정말 잘 버티셨어요. 정말..."
울음이 터져 나온다.
A의 부모님은 나를 안아 주며 같이 운다.
A는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편안하게 자는 것 같아 보인다.
창문 너머 다시 해가 나올 때, 가리던 커튼은 이제 없다.
A는 이제 창문 너머를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딱 1달만 회복하면 금방 돌아다닐 수 있다.
A가 말은 한다.
"선생님! 한 달 뒤면 눈 다 녹는 거 아니에요? 눈사람 만들고 싶은데..."
"아마 안 녹을 걸? 그러고 녹으면 내년에 만들면 되지, 이제."
"선생님이랑 못 만들잖아요. 선생님은 바쁘니까."
"네가 오면 눈오리도 만들어 줄게. 걱정하지 마."
"약속 꼭 지켜요!"
한 달이 지났다.
눈이 녹아 얼음만 조금 남은 지금, 퇴원한 A는
눈사람을 못 만들었다고 투덜거릴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2달 남았다고 부모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이런 걸 생각이나 했을까.
이제 2달을 넘는 날이다.
신이 있는지 몰라도, 나는 A처럼 강하고 멋있는 아이는 당연히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웅'
핸드폰에 진동이 온다.
'A 부모님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미소가 나온다.
입이 삐쭉 튀어나와 아주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겠지?
'선생님, A 장례식에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가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귀에서 웅웅대는 소리와
물에 빠진 듯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입는 흰 가운에서,
그다음으로 많이 입는 검은 정장을 입고 간다.
A는 웃으며 액자 속에 있다.
점점 주변이 안 보인다.
그저 A의 얼굴만이 더 가까이 보인다.
A의 부모님은 고맙다며 나를 안아 준다.
추운 곳에 오래 있어서, 촉감이 얼어붙은 느낌이다.
뺑소니라고 하더라.
A에게 기적을 준 게 아니구나.
나에게 기적을 준 거구나.
한 사람에게 이렇게나 이기적으로 굴 수 있구나.
끝이 맞는구나.
내가 말을 해서 그렇게 된 걸까?
검은 옷들 사이에, 흰 셔츠는 내 가운보다 더 정의로울 거다.
내가 울어야 할까?
향 냄새 사이에, 네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섞을 수 있을까.
나는 멍하게 절을 한다.
한 번, 두 번.
일어나야 하는데, 못 일어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온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