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크지도 살집이 많지도 않은 나는 찐 체력을 자랑한다.
달리기를 잘하지는 않지만 오래 달리기는 자신이 있고 겉으론 보기보단 힘을 잘 쓰는 편이다.
철이 들고 결혼을 한 이후로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사는 대부분 나 혼자의 몫이었고, 웬만한 가구는 남의 도움받아 움직인 기억이 없다. 나름 힘쓰는 요령도 억센 함 씨 가문의 엄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이지 싶다.
아주 어릴 적에는 삐쩍 마른 삐삐를 닮아 말라꺵이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지만, 큰 병치레를 한 적도 없고 큰 수술을 한적도 없이 지금껏 지내왔다. 두 아들 낳는 것도 무리하지 않고 순산을 했고, 부모 닮아 잇몸이 약한 탓에 어릴 적부터 치과를 동네 문방구만큼 드나드느라 돈이 꽤 많게 들긴 했지만, 몸이 아파 식구들을 힘들게 한 기억은 여태껏 없다 단연코.
그러나 세월엔 장사가 없는 게 맞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붙여진 ‘마징가’라는 별명이 무색한 요즘이다.
코로나 시국부터 증세가 심상치 않았던 부비동이 말썽이었다. 알레르기로 알고 지낸 게 몇 년, 카펫으로 이루어진 집안 구조 때문에 먼지가 많아 유난히 힘들었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심한 증상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아 알게 된 사실. 내겐 부비동 증세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를 캐물으니 임플란트를 하면서 상악 부비동을 뚫은 새로 심은 치주가 세균에 감염이 되었고 그 세균이 부비동안을 잠식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내 부비동 오른쪽 볼때기 안쪽이 온갖 지저분한 액체로 꽈악 들이차 있다는 것.
지난 몇 년간 항생제를 몇 개나 바꿔 치료했지만 증세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만성부비동 염증 환자로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사를 맞닥뜨린 올해 여름. 미치도록 먼지를 마셔가며 박스를 접고 테이프를 봉하고 옮기고 또 옮기고 뜯고를 반복하면서 증세는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그 바쁜 이사 와중에 병원을 찾았고 의사의 주문으로 CT를 촬영했다. CT결과는 참담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염증증세가 왼쪽 상악으로 번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이 세균에 잠식당할 수 있고 심하면 실명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 당장 수술 날자가 잡히고 항생제가 투여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첫 번 처방받은 항생제는 이틀 만에 중단했다. 당뇨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늘 혈당을 재고 조심해야 하는 당뇨 전단게 경계인인데, 약을 먹고 나면 혈당이 공복도 170이 훌쩍 넘는 것이었다.
항생제를 바꾸어 10일 동안 복용한 후 수술 날자가 되었다. 아침 7시 30분 수술이라 아들의 차를 얻어 타고 새벽같이 병원에 도착했다. 간단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수술이지만, 미국 병원답게 준비하는데 거반 2시간이 걸렸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잠시 머문 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환자가 마취가 깨어나고 가스가 나와야 하는 수술이 아닌 담엔, 피가 철철 흘러도 퇴원해야 한다. 가벼운 장염이 걸려도 며칠씩 병원 신세를 지면서 링거를 맞고 지인들의 병문안까지 받는 호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참고로 어마어마한 큰 수술을 한 작은 아들도 마취 풀리고 가스가 나오고 곧바로 삼일째 되는 날 퇴원했다. 드레싱을 할 때마다 소독제로인해 상처에서 거품이 부걱부걱 차오르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나 그건 보호자의 몫이다. 병원의 간호사의 손길 하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청구서로 귀결되기에, 병원에 남아있으라 해도 퇴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큰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아도 밖에 눈보라 몰아쳐도 딱~ 하루 재워주고 강제 퇴원시킨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얘기라 나로선 다행인 일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집에서 1주일간 환자코스프레를 했다. 처음 이틀은 마약성 진통제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3일째부터는 강력진통제와 함께 코세척을 시작하고, 연고에 알레르기약에 입안으로 털어 넣는 약의 개수가 급증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얼굴의 부기도 빠지고 통증도 많이 가시고 살만해졌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아래 위층을 오가는 게 불편할 정도로 힘이 없긴 했지만, 전에 비해 비강이 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1주가 지나 담당의사와 follow up 진료가 있었다. 담당의사왈 “ 이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 동안 멀쩡히 냄새도 맡고 견딜 수 있었던 게 믿기지 않아요. 처음에 진료했던 것에 비해 지난 한 두 달 동안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었네요. 엄청난 양의 고름과 진액을 뽑아냈으니 무척이나 시원하실 텐데요..”
아직 그 정도로 시원함을 느끼기엔 통증이 남아있고 코세척 시 불편감, 이물감이 있어 잘 모르겠으나, 담당 의사는 수술이 깨끗이 되었다니 앞으로 남은 회복기간을 잘 보내는 것이 관건이라 했다.
전 집주인으로부터 강제 퇴거 공지를 받고, 집을 구하러 종종거리고, 밤잠을 설쳐가며 꼭꼭 닫은 방 안에서 짐을 싸고, 풀고, 쓸고, 닦고, 정리하고… 몇 달간의 지난한 시간을 뒤로하고 이번 기회에, 맘 편히 몸과 마음을 회복하 자자라는 마음으로 쉬고 있다.
일이 터지면 그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종종 쟁이, 염려쟁이 마징가 아줌마에게 이렇게 강제 휴식의 기간이 주어졌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지 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