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옛집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요.

연재를 마치며..

by 이향

15년 만의 갑작스러운 이사를 계기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늦여름. 시원한 바닷바람이 쌍방으로 불어주는 시원함이 없었다면 견디기 쉽지 않았을 일이다.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서 불편할 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아쉬운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힘을 잘 쓰는 것도 젊을 때 이야기이고, 몸이 아파도 고사리손 아들의 도움보단 듬직한 어깨가 있으면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약해지는 마징가 아줌마 넋두리이다. 하하.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집을 구하고 이사를 했고 웬만한 짐은 다 풀어 제자리를 찾았으니 큰일을 마무리 지은 셈이다.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고 수술을 받은 후 회복기를 거쳐 다음 달에 최종 진료를 받아 회복이 완전히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만 남겨져 있다. 높은 혈당 걱정에 안과 진료도 받았지만 녹내장 염려는 아직 없고 탄수화물을 거의 90%까지 배제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도 문제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


2025년 큰일을 치러낸 마징가 아줌마,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요즘 내가 감사해야 할 일들을 나열해 보곤 깜짝 놀랐다.


하나, 한여름 기온이 높은 몇 달간 동안 쉬임 없이 에어컨을 켜야 하는 먼저 집에서는 전기료가 한 달에 300불 넘게 나오는 게 일상이지만, 에어컨이 없어 옵션이 없는 새집은 바닷바람이 양방향으로 시원하게 불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해 좋다.


둘, 미국에 산지 삼십오 년이나 넘었지만, 어쩌다 지금껏 모든 집에는 카펫이 깔려있었다. 카펫바닥은 겨울엔 따뜻할는지 모르나, 여름엔 더위를 한층 더 심하게 느끼게 함은 물론, 늘 쌓여있는 먼지를 매일 청소기를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다. 새집은 비록 낡고 울퉁불퉁 엉터리 래미네이트 바닥이긴 하지만, 집안 전체가 나무바닥이라 쓸고 닦으면 세상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게 즉각 느껴질 정도로 쾌적하다.


셋,실제로 집에서 20분 거리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출근길 최소한 40분 정도는 걸리는 출퇴근길을 운명이려니 하며 살아왔었다. 그래서 트래픽으로 초주검 되어 집에 도착하면 저녁이고 뭐고 그냥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밤 9시 가까이 되기에 운동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회사까지는 신호등을 모두 합쳐도 15분이 채 안 걸린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해서 먹고 치우고 나도 8시 정도밖에 안 된다. 2층 빈방에 있는 실내 자전거를 30분간 타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잠들기 전까지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넷,회사가 위치한 동네를 중심으로 반경 5-6마일 이내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한국마켓이 조금 먼 게 흠이지만, 김치와 쌀이 떨어질 때 외에 갈 일이 없는 곳이니 괜찮다. 싱싱한 횟감이 있고 저녁 7시가 넘으면 뷔페로 차려진 음식을 비롯해 25% 딜이 있는 일본마켓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다. 2차 대전 이후 정착했던 일본타운이 있던 곳이라 일본음식점도 많아 카레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아들에게 이 동네는 적격이다. 한국음식점은 당연히 있고, 가락국수집에, 카레전문점에, 일본식 파스타 전문점, 화교가 운영하는 찐 간짜장 맛집 중국집도 지척이다.


다섯, 주말엔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서성대는 타인종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지만, 기본적으로 나이 든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많은 동네다 보니, 저녁 8시면 한밤중같이 조용하다. 오전에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Lumber공장을 드나드는 기차가 한두 차례 있고, 저녁 7시경이면 어김없이 ‘엘리제를 위하여’ 또는 ‘메리 고 라운드’ 음악을 틀며 나타나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있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양호한 이웃들이라 할 수 있다.


여섯, 나도 아들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듯, 큰 소리를 내는 일은 없다. 어쩌다 쌩쌩 부는 바람에 쾅하고 닫힌 현관문에 오히려 우리가 놀랄 정도이니 나쁘지 않다. 5개 유닛이 함께 나눠 쓰는 쓰레기통도 넘치는 법 없이 무난하게 한주를 보낼 수 있고, 집 앞에 배달된 아마존 박스가 없어지는 일도 없다. 현관 게이트는 늘 열려있고 홈리스가 그 문을 통해 주차장까지 내려가 쓰레기통을 뒤질 법도 한데, 아직까지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겪지 않았다.


무난한 이웃들, 시원한 바람이 선물인 좋은 날씨, 출퇴근에 스트레스 없는 가까운 거리, 먹거리가 몇 걸음 지척인 동네. 감사할 것, 다행이라 할 것들이 많은 집이다.


얼마 전 회사 동료 몇 명이 집을 방문했다. 내 딴에 신경 써서 대청소도 하고, 혈당 걱정 때문에 몇 년을 손에서 놨었던 파스타 요리를 장만했다. 얼마 전 여행했던 Napa Valley에서 사 온 높은 등급의 핑크와인까지 곁들여 모두가 대만족이었던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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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오랜만에 지인들을 초청했다.

“ 어머…. 첨에 이사 왔을 땐 집이 좀 낡고 허름해 보여서 어떨까 싶었는데. 이거 완전 환골탈태 했는걸요? 이렇게 깨끗하고 쓸고 닦으시니 집이 완전 다른 집 같아요..”


벌써 이사를 한 지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사람도 집도 마음을 쏟고 정성을 들이면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별다르게 좋았을 것도 없는 옛집 생각만 하면, 아직도 졸지에 나를 내쫓아낸 집주인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이젠 그러지 않기로 한다.


며칠 전 아들이 좋아하는 핼러윈 장식도 해서 10월의 마지막날을 보냈고, 연말에는 길가에서 들여다뵈는 예쁜 트리와 함께 아들이 좋아하는 알록달록 감성 전구들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려 봐야겠다.

몸도 많이 회복되고 마음도 안정된 마징가 아줌마,

11월 첫 주, 오늘은 해피 가을을 오랜만에 즐기고 있다. 딱 좋다… 요만큼만 누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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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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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하고 부족하기만한 글들을 읽어주시고 동감해 주신 구독자님들께 감사를.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 조건. 꾸준히 매일같이 성실하게 조금씩이라도 써야 한다는 간단한 지론을 잘 지키지 못하는 스스로를 채찍 하느라 무리인걸 알면서도 긴 연재를 밀어붙인감이 있습니다.


성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