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조휴일, Teen Troubles

그리고 나.

by 조승우

검정치마는 조휴일의 원 맨 밴드다. 그래서 밴드 검정치마에 대해 말하는 건 곧 인간 조휴일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고, 밴드 검정치마의 역량이 곧 인간 조휴일의 역량으로 귀결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내가 검정치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검정치마가 아닌 조휴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왜 하필 검정치마에 열광하는가? 아무리 대한민국 락 신이 좁다 한들 -물론 지금은 인스타그램의 순기능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지만- 들을만한 국내 밴드가 검정치마 하나만 있지는 않지 않는가. 그렇다고 조휴일의 라이브 실력이 월등하지도 않고, 전통적 의미에서의 락스타적 기질 또한 공연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전통적 락스타적 기질이란, Arctic Monkeys의 알렉스 터너나 Pearl Jam의 에디 베더처럼 무대를 휘어잡는 기질을 의미한다. 검정치마의 공연은 조휴일이 아닌, 역으로 관객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준다. 한시오분이나 Antifreeze를 부를 때를 떠올려 보라)


그럼에도 내가 조휴일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에게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사실 이런 동질감을 서서히 느끼게 된 건 조휴일이 자기의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앨범인 <Teen Troubles>을 발표한 이후부터다. 그는 재미교포 출신이며, 나도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오래 자란 탓인지 그의 추억이 담긴 앨범이 나에게는 특별하지만, 또 마냥 새롭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가사 속 내용이 충분히 익숙하고, 몇몇 풍경 및 경험은 나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Teen Troubles>는 상상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회상이다. 물론 내가 검정치마를 처음 접한 계기가 <Teen Troubles>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앨범을 듣고 난 이후 밴드 검정치마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게 사실이다.


내 손으로 직접 적기는 부끄럽지만, 열심히 일상을 사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도 내가 그렇게 살았으리라고 추측을 한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렇지 아니하였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옳고 그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Teen Troubles>를 듣고 있노라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일탈과 정도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나는 7년 새 꼬마였던 아이들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한 손에 쥐어든 콜라는 어느새 술이 되었고, 친구들은 펜 대신 담배를 집었다. 몇몇은 그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해 밤을 헤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쫓아다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무엇이 옳은지 모른 체 여기에 붙었다가 저기에 붙고는 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있었던 일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추억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정처 없이 헤맸던, 역동적이었던 당시를 떠올리는 게 회사에서 무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는 걸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역동성이란 곧 찬란함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Teen Troubles>는 과거, 그러니까 오히려 불안정함에서 꽃피웠던 찬란함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수단이 되었다.





일단 계단에서 40oz 하나씩 때려 박고

갖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공원으로 가네


- Friends In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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