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가 1947년에 발간한 소설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본디 '사양'이라는 단어의 뜻은 저녁때의 햇빛 또는 저녁때의 저무는 해를 의미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듯하고,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인 '사양산업'처럼 대상의 몰락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더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이 소설을 집필한 다자이 오사무 또한 '사양'을 대상의 몰락을 비유하는 데에 사용하였는데, 책의 주제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몰락한 귀족 가족의 평민 사회로의 추락과 적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체념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족의 장녀인 이혼한 가즈코, 어느새 몸이 쇠약해진 어머니, 전쟁에서 귀환 후 매일 술에 빠져 사는 남동생 나오지를 중심으로 그들 개인이 어떻게 현실을 수용하고자 노력하는지 보여준다. 다만 이번 글에서는 소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풀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느낀 점을 위주로 서술하고자 한다.
160 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작가는 옛 귀족들이 아등바등 '지상'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과연 아름다운 몰락이 존재할 수 있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아름다운 몰락이 어쩌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남긴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몰락한 개인의 가슴 한 편에는 꽃이 필 수 있는 공간 하나쯤은 있기를 마련이고, 꽃이 핀다는 건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레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몰락 자체는 쓰라릴 수 있으나, 그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면, 그 몰락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다만, 아름다운 몰락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큰 틀에서 동의하나, 몰락 후 새로운 시작을 찾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주인공 가즈코가 자신의 몰락을 아름답게 이끄는 방법으로 택한 건 '사랑'과 '혁명'이다. 그리고 전자 및 후자 모두 자기가 직시해야 할 현실을 애써 기만하려는, 일종의 배덕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즈코가 사랑하는 대상은 아이까지 있는 기혼자이다. 그녀는 기혼자의 아이를 가짐으로써 새로운 세대를 잉태한다. 새로운 시작을 그녀가 온전히 수용하는 게 아니라, 사생아에게 떠넘기는 기분이 든다. 또한 그녀가 꿈꾸는 혁명이란 곧 기성 윤리 체계를 거스르는 것인데, 이것 또한 결국 어찌 보면 귀족에서 평민으로 몰락한 후 본인이 살아야 할 체제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한 점들 때문에 오히려 작가는 독자에게 과연 온전히 '아름다운' 몰락이 존재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