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간이 흘러 9월이 되었다. 저녁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만 열어도 새근새근 잘 수 있을 만큼 더위가 가셨다. 지금도 방 창문을 열어둔 채 글을 쓰고 있는데, 아예 안 더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한 밤이다. 오늘 같은 날, 새삼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8월 2일 토요일 저녁, 펜타포트 헤드 라이너인 Pulp를 보기 위해 맨 앞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인 탓에 더위가 극도로 치달았던 시간이었다.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뒤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거두절미하면, 대충 8월 10일만 지나도 여름 바람이 미세하게 시원해진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있자니 아침부터 피부가 타오를 듯 해가 쨍쨍한 여름도 있고, 마치 온탕 안을 헤매는 것처럼 습한 여름도 있겠지만 결국 '더위'라는 본질은 같은 여름이 아닌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오늘같이 명백하게 날이 시원해져야만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면, 그날 이후 그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감각을 의식했는지 나도 이번 여름에는 날씨의 미세한 변화를 의식하며 지낸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런 순간들 말이다. 갈수록 뭔가 아침에 샤워하고 나왔을 때 머리가 더 잘 마르는 거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출근길에 땀이 갈수록 덜 맺히는 거 같기도 했다. 또 그뿐인가, 요새 러닝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창 더울 때는 밤에도 제대로 못 뛰었지만, 습기가 가신 덕분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됨을 점차 체감했다. 오전에 뛸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햇빛 아래라고 할지라도 가로수길 안을 지날 때면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날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에서 책을 읽거나 필기를 할 때 손에 땀이 조금씩 덜 차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그동안 여름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항상 발생했던, 자연스러운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그동안에는 이 모든 것들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올여름에는 내가 그것들을 의식하며 보냈다는 게 차이다. 그렇다. 내가 이번 여름을 지내며 깨달은 점은, 매사에 섬세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감각을 의식적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점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감각과 또 그 감각의 변화를 의식해야만이 내 주변의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