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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광걸 Apr 27. 2020

왜 우리는 남의 나라를 원조해야 하는가

 경기도 성남시 수진동에는 경사가 급한 비탈길 동네가 있다. 내게는 친숙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어릴 적 뛰놀며 정겹게 살던 달동네인 서울 돈암동 산동네와 같은 느낌을 준다. 주택들은 다소 허름하지만, 꽤 정비된 느낌을 주는 동네다. 1970년대 청계천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이주지로 개발된 까닭에 소방도로 등이 반듯했다. 그런데 이주민들에게는 적지않은 설움과 아픔이 있었다고 한다.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하천옆 판자촌을 철거하였고 그곳에 살던 분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장 거주할 집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품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은 대중 교통편도 드물던 외딴 곳으로 이사와야 했다.      

전쟁 고아인 듯 차도에서 구걸하는 소녀

 어느해 초겨울 ‘불우이웃돕기’의 목적으로 성남시와 협력하여 찾아간 동네가 수진동이었다. 도시락 배달을 하기 위해서 였다. 비탈길을 오르니 정상부근에 찻길이 있었고, 대로변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재봉틀을 돌리는 40대 중반의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락을 건네며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코이카에서 왔노라”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싸했다.      

“뭐라고요? 외국을 돕는 다고요?”      

예기치 못한 질문과 그 분위기에 말문이 막혔다. 6.25 전쟁 당시 받은 도움과 아프리카 기아를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삶과 노동에 지친 얼굴을 마주하며 나는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말문이 흐려지며 괜히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으로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어디를 돕는다고? 코이카? 왜 남의 나라를 도와줘?”

“그러게 말이야, 나 참….”     


귓가에 부부간에 나누는 얘기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하다.    

  

'울지마 톤즈'를 지원하는 김연아 선수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분들도 세금을 낼 것이다. 열악한 여건을 견디며 힘겹게 일해서 번 귀중한 소득을 세금으로 낸 그 돈이, 해외원조 자금으로 쓰인다. 그런데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왜 도와야 하는지, 얼마나 원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분들의 탓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해외원조 예산규모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으며, 2020년에는 약 3조5천억원에 상당하다. 서울 아파트 중간가격인 9억 원짜리 아파트를 해마다 4,000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또, 우리나라 전국평균 아파트 중위값인 4억 원으로 환산할 경우 국민 4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9,000세대의 아파트를 전국에 제공할 수 있는 규모다. 이런 규모의 돈이 현재 해외원조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적극 알리고,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시민들의 비판적인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한 원조를 수행할 수 없고, 그렇게 수행해서도 않된다.      


 대한민국 물품을 수입하는 대부분의 후진국은 무역역조를 겪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첫 해외 근무지였던,  지도상에서 호주 위에 있는 섬 나라인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의 경우 우리나라는 목재를 수입하고, 섬유제품과 가전제품 등을 수출하였다. 대부분의 빈곤국들은 한국에 원자재를 공급하고, 한국으로부터 가공된 제품을 수입한다. 대한민국은 이들 후진국과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본다. 만약 우리나라가 원조를 급격히 줄이거나 중단할 경우에 열악한 재정상태인 그들은 한국과의 무역역조 현상을 문제 삼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무역역조를 겪는 많은 국가들은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불공정 무역,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지적할 것이다. 성남시 수진동에서 만든 섬유 중간재가 미얀마로 진출한 한국기업의 공장에서 재가공되어 제3의 국가로 팔려나가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우리만 살겠다고 해외원조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라크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SAMSUNG 로고

 우리나라는 세계 해외원조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부분 개도국들이 겪은 쓰라린 과거를 대한민국은 함께 공유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식민지였고, 내전을 겪었으며, 극심한 굶주림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 눈에도 한국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라였고, 한국보다는 잘 살았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의 성공은 그 자체로서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는 개도국들에게 희망이다. 원조를 받는 최빈국에서 공여국으로 거듭난 최초의 나라이다. 선진국과 후진국들 모두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빈곤 해소에 이바지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가 원조를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할 경우 혹은 경제적 실리만을 추구하는 원조를 할 경우 대한민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지구촌 대다수 개도국으로부터 “너 마저...”라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머지않아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부패한 정부에게 왜곡된 원조를 제공하는 중국, 수출시장 확보와 원자재 확보 등 자국 경제 실리에 치중했던 일본, 식민지를 경영했던 서구세력의 원조, 모두 국제원조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매서운 눈초리와 힐난을 받고 있다. 이 길은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ODA가 지향하는 방향이 모호하면 원조 금액의 변동이 심해져서 오히려 수원국에 부담이 되고, 국내외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기존 선진 원조국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주고도 욕먹는 원조를 해야 할까?     

미테랑 이름을 딴 아르빌의 고가도로

 중국은 한때 아프리카의 진정한 친구로 칭송받으면서 원조를 수행했다. <죽은 원조(Dead Aid)> 의 저자 담비사 모요는 서구의 원조는 부패만을 키울 뿐이라고 비판하며, 그나마 인프라 건설을 제공하는 중국의 원조는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몇 년전부터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중국인의 추방, 중국 자본의 축출을 내세우는 나라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중국은 원조를 통해 빈곤국의 자원을 수탈하였고,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을 갈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나 고대 왕국이 있던 아샨티(Ashanti) 지역에 불법 금광을 운영하여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고, 나이지리아에서는 과도한 상행위로 중국인들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우리 봉사단원들은 한국 사람임을 나타내려고 일부러 태극기를 가방에 달고 다니거나 혹은 한국임을 나타내는 셔츠를 입고 다니곤 했다. 실제 어떤 가나 부인은 우리 여성 봉사단원을 중국인으로 오인해서 시비를 걸고는, “중국 놈들 꺼져!”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목조로 만든 왕궁의 조각품(만달레이)

 미얀마의 신 행정수도인 네피도에서 차로 1시간 이내의 위치에 만달레이(Mandalay)라는 고대 도시가 있다. 이곳은 중국과 육상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만달레이 시내 고대 사원 바로 옆에는 중국 정부가 지원한 직업훈련원이 있다. 우리나라가 지원한 직업훈련원의 4배 정도 됨직한 엄청난 규모였다. 10여 개가 넘는 실습동 건물에는 대형 기계와 실측 장비들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흔히 보았던 기계와 공구류, 계측 장비들이 즐비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모든 장비에는 그 장비의 규격과 간단한 구조를 표시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본 거의 모든 장비는 얼마 전에 부착한 표지판이 이전 표지판 위에 새로이 겹쳐 있었다. 표지판은 알루미늄 재질로 되어 반짝였으나, 장비 본체는 그렇지 않았다. 각 장비에는 중국어로 이전에 배치되었던 장소가 허연색의 페인트로 쓰여있었다. 그 장비들은 중국의 각지에서 모은 중고였다. 기계를 땅에 부착하는 곳이 상당히 마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는데, 페인트층이 최근 것과 오래된 것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각 장비에 부착된 가격을 보고는 속으로 또다시 놀랐다. 알루미늄판의 표식지에는 대략 5배에서 10배가량 비싸게 표시된 위엔화 가격이 붙어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누가 누구를 속인 것일까? 당시 미얀마 실세였던 군부가 부패한 것일까? 차관(借款)을 받으면서 고가의 장비를 받은 것으로 하여 중간에 가로챈 것일까? 아니면 중국 측의 배달사고 혹은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일까? 

위험천만한 퇴근길

 우리 직업훈련원이 개원하기 전에 당시 딴쉐 대통령이 불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직훈원의 규모는 작았지만, 전자, 기계, 목공 등 각 공과의 모든 실습 장비와 재료는 신제품들이었다. 작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제품 구성이었고, 만달레이 직훈원과는 대비가 되었다.     


 태국 방콕(Bangkok) 공항의 귀빈창구에는 자그마하게 일본 원조자금으로 건축되었다는 표식이 새겨있다. 크게 새겨 넣지 않은 이유는 일본에 우호적인 인식전환에 역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일본의 원조가 일본의 자국 이익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태국 사람들이 비판하고 나서자 방법을 바꾼 것이다. 이들 두 국가의 사례는 모두 우리나라가 남의 나라를 도와주면서 삼아야 할 반면교사이다. 주고도 욕먹는 원조를 해서 되겠는가?      


 원조는 한쪽이 주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하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ODA는 기실 국가 전략사업이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전략사업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넛지(nudge)’하듯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름을 내걸고, 때로는 이름을 내려놓고. 슬쩍 밀어줘도 현지에서는 누가 도와주는지 다 안다. 그러니 결국 잘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 한국사람에게 유구히 전해오는 건국이념으로 ‘널리 사람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꿈이 있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현재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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