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지니 Dec 06. 2023

퇴사 후 처음 선택한 길

밴쿠버에 온 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영주권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밴쿠버 생활 초반에만 해도 우리 부부는 이 나라에 눌러 살 생각은 없었다.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은 겨울이라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한국의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에 익숙했기에 이곳 생활이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영주권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올 때는 내가 오고 싶어서 왔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 교실 분위기나 아이들이 학교 생활하는 것을 보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아이답게 크는 모습, 아이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모습을 보며 ‘한국에 돌아가도 과연 지금처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 부부는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이민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될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워크 퍼밋(Work Permit)이나 앞으로 일을 하겠다는 잡 오퍼(Job Offer)를 고용주로부터 받아야 하며 일자리가 속한 직업군에서 요구하는 영어점수를 충족해야 한다. 


보통 한국에서 대기업이나 아무리 연봉이 높은 직장을 다녔어도 이곳에서 매칭되는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요구하는 영어점수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지인으로부터 나의 직장 경력을 살려 지원할 수 있는 회사의 대표를 소개받게 되었다. 


삶의 모든 경험은 다 이유가 있다고 했던가?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힘들기는 했어도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며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밴쿠버에 온 뒤로 끌어당김이나 부와 영성, 내려놓기에 관한 책에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삶이 내게도 펼쳐지길 바랐다. 그래서 당시 내게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회사의 대표를 소개받았을 때 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몇 주 뒤 그 대표가 진행하기 어렵겠다고 마음을 바꾸자 나는 이내 혼란스러워졌다. 책의 내용이 좋은 말들이기는 하나 내 인생을 맡겨도 될 만큼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어떤 때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고, 또 어떤 때는 간절히 원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과연 끌어당김의 힘이 있긴 한 걸까? 

이 힘을 법칙(Law)이라 부르면서 어떻게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작용한다는 말인가? 


나는 더 많은 책을 읽고 탐구했지만 내 앞에 펼쳐지는 삶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려 지원하지 않더라도 영주권을 신청하는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아교사 같은 경우는 일손이 부족하여 BC주에서 이민을 환영하는 직종이었고, 레스토랑 서버는 당장 일을 시작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일자리가 많았다. 하지만 경력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고, 고용주가 사업을 접거나 직원 간 문제가 생겨 이직을 하게 된 경우도 자주 있는 일이라 결코 쉬운 길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또 다른 지인의 소개로 두 군데의 이주공사를 소개받게 되었다. 


처음 미팅한 이주공사에서는 내 경력을 살리는 방향으로는 지원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흘러가는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미팅한 또 다른 이주공사에서는 영어점수만 문제없이 나오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답변을 해주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이주공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삶은 영주권을 준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주권 준비를 시작했지만 영어점수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영어에 손을 뗀 지도 오래되었고, 시험은 더더욱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밴쿠버에 와서 자연을 바라보며 좀 느긋하게 살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책상에 앉자 영어공부를 하게 된 신세가 되었다. 밴쿠버가 영어를 배우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은 맞지만 그게 아이들은 위한 곳이라 생각했지 나를 위한 장소가 될 줄은 몰랐다. 



회사를 나온 순간 이미 정해진 길이란 없었다. 모든 길이 내게 열려 있었는데 영주권 또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회사는 인생에서 하나의 길을 의미한다. 그 길은 안전지대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제약사항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회사를 제쳐 두고 생각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회사라는 거대한 틀이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동시에 수많은 제약사항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순간의 느낌은 자유가 주는 홀가분함보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이 더 컸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결정할 일들이 우수수 떨어졌는데 그것을 감당하는 게 버겁게 느껴졌고 그동안 얼마나 수동적인 삶을 살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전 10화 타국에서의 임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