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할 만한 적당한 시점이 있음을 의미하지만 내게는 ‘뭐든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해석이 더 와닿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다. 나는 아이들의 유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일을 하고 있었고 아침이면 뿔뿔이 흩어졌다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만났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나는 삶에서 아이들의 행복도, 우리 부부의 행복도, 가정의 의미도 찾지 못했다.
해외 살기 1년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었는데 엄마는 퇴사, 아빠는 육아휴직이라는 과감한 행동과 리스크를 감당하며 모두가 함께 떠나온 것도 그 이유였다.
바라던 대로 밴쿠버에 온 뒤 우리 가족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함께 가구를 나르고 조립하여 새로운 터전을 꾸몄고, 우리 부부가 직접 요리해서 아이들과 식사하는 소박한 일상마저도 좋았다.
밥상머리 대화는 온 가족이 함께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다. 식사 중 떠오른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에도 생명공학을 전공한 아빠는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며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도 높아지고 이제는 단순 문답을 벗어나 토론의 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회사 최초의 남성 육아휴직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만큼 이런 쪽으로는 결코 선두가 되는 성격이 아님에도 가족을 우선시했던 남편의 과감한 결정은 분명 탁월했다.
이곳에서 삶은 우리가 부모로 서의 존재와 역할을 더 뚜렷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넘치도록 제공해 주었는데 밥상머리 대화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도전을 지켜보았다.
회사만이 길은 아니며 중간에 원하는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한다면 그 일을 직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넓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을 배우리라 생각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의 유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찾고자 했던 가족의 의미는 대부분 일상 속에 숨겨져 있었는데 산으로 강으로 계획 없이 떠나는 휴식 속에도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 조명 불 아래 나란히 누워 책 읽는 시간 속에도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상황 속에서도 가족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