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 앞에서, 나를 돌아보다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1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61


― '김수영' 시 앞에서, 나를 돌아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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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올리는 글들은 어쩌면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느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브런치에 옮기면서, 완전히 새롭게 다듬고 바꾸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AI 도움도 조금 받으면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왜 예전에 올렸던 글을 또 올리느냐"는 항의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글처럼 느껴지셨다는 뜻이겠지요.


비겁한 변명 같지만... 사실입니다잉.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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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김수영' 시 <풀>을 처음 읽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조금 무너져 있었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 자꾸만 넘어지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낀 이상한 열패감.


그때, 이 시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울고, 먼저 일어난다"


이 한 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풀처럼, 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쉽게 주저앉고,

언젠가는 다시 일어선다는

당연한 사실이 왜 그토록

나를 울컥하게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내 고통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풀처럼 쓰러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안도. 그 평범함이 내게는 용기 였던 것이다.


삶이 벅찰 때마다 나는 이 시를 꺼내 읽었고 김수영 시 <풀>은 나를 여러 번 일으켜 세웠다.


<풀>이라는 시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정작 김수영이 언제,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하면 김수영을 내 또래 쯤 되는 저항시인 정도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김수영 삶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김수영에 의한 위로는 더 깊어 졌다.


이 글은 시와 인간,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김수영은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 지금으로부터 무려 57년 전 시인이었다.


내 아버지 세대보다 더 빠른 세대이다. 그런데도 <풀> 같은 시를 썼다니 김수영이 더 놀라워 졌다.


세상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대개 주류는 세상을 움직이고, 비주류는 그 움직임에 반대하며 살아간다.


나는 김수영이 비주류였을거라는 사실을 김수영 시를 통해 직감 했지만, 그의 삶을 알고 나서야 그 직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시에서 혁명을 말했고, 자유를 외쳤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도 시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성인군자 같은 시인은 아니었다.


그는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매일 술에 취해 아내와 아이들을 울리기도 했고, 문단 내 갈등 에서는 욕설과 다툼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랭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원고료가 나와도 같이 문학하는 동때들에게 술 한 잔 사지 않는 인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걸 잘 보여주는 시가 한 편 있다.


ㅡ 죄와 벌 ㅡ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 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이 시는 실제 있었던 일이었고, 김수영은 배우자를 때린 것에 대한 아련한 후회와 자신에 대한 조소를 담아 시로 남겼다.


김수영 시가 이렇게 치열했던 건,

어쩌면 김수영 삶이 그만큼 모질게 짓밟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대는 그를 다치게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해방 후에는 6.25 전쟁으로 인민군에 끌려가 고문당했고, 결국 거제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거기서 살아남아 돌아온 그에게 남은 건 무너진 몸과 고통뿐 이었다.


그리고, 김수영 사랑도…


'김현경', 김수영 아내이자 뮤즈


김수영에게는 김현경이라는 부인이 있었다.


전쟁 중 김수영이 인민군에 끌려 가 있는 동안, 김현경은 생계를 위해 김수영 선배이자 절친인 '이종구'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사실 이종구는 김수영과 김현경 사이를 이어준 인물이었지만, 내심 김현경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이종구는 김현경 아버지가 첩으로 데리고 온 여자 아들이었다. 김현경과 피는 안 섞였지만 김현경 아저씨 뻘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두 사람 사이에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난다.


전쟁이 끝나고 김현경을 찾아 헤메던 김수영은 절친 시인 박인환에게 김현경 거처를 듣게 된다. 김수영은 당장 그 집을 찾아가 말한다.


“가자.”


그러나 김현경은 따라가지 못했다. 이종구가 그녀 가족까지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조용히 돌아서며, 친구 이종구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


“자네, 그럼 안 되네.”


그리고 남긴 김수영 시가 있다.


ㅡ 너를 잃고 ㅡ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몇 년 뒤, 김수영과 김현경은 다시 만난다


김현경은 아이들 때문에 용기를 내어 김수영에게 다시 만나자 청했다. 김수영은 약속 장소에서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나가자.”


둘은 그렇게 다시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부부의 삶은 아니었다. 이제는 함께 문학을 하는 동료이자, 인생을 나누는 동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김수영이 쓴 시 중 하나는 이렇다.


ㅡ <성(性)> 중에서 ㅡ


[그것하고 하고 와서

여편네와 하던 첫날 밤

반 시간도 안 되었지만

여편네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건 다정함도, 아름다움도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남긴 민낯의 기록일 뿐이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槪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憐憫)의 순간이다 황홀(恍惚)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憐憫)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1968.1.19〉


나는 이런 시가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1968년 그해 겨울, 김수영은 술에 취한 채 마포 언덕길을 걷다가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은 풀을 노래했지만

풀처럼 다시 일어나진 못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 김현경은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2025년.

아흔여덟의 김현경은 여전히 책과 더불어 살아간다.

최근, <백년의 사랑>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녀의 깊고 잔잔한 인터뷰가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연유다.


아직도 그녀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는 '김수영 전집'이 펼쳐져 있었다.


'시인의 삶'이란 무엇일까?


비처럼 조용하고, 바람처럼 끈질긴 삶?


비주류의 삶?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비가 부드럽게 내리는 오늘,

그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ㅡ 초롱박철홍 ㅡ


근데 아래 김수영 사진 영화배우 '안성기' 사진 아닙니다.

너무 닯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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