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흐른다 884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84
ㅡ 장녹수와 김개시, 그리고 김건희 ㅡ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먼저 자리를 잡고 불러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월의 마지막 날이 주는 묘한 비감 (悲感)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날엔 문득 역사의 뒤안길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비극적 운명을 살았던 세 여인의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어제 국정감사에서는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꾀한 이유 중 하나가 '김건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발언이 나왔다.
도대체 김건희는 어떤 여자였기에, 무슨 힘으로 윤석열 마음을 그렇게까지 사로잡았던 것일까?
사실 우리 역사 속에도 그런 여인들이 꽤 있었다.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왕의 눈에 들어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여인들.
그중 가장 김건희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유명한 조선의 여인들과 함께 오늘 이야기를 펼쳐보려 한다.
조선시대 김건희와 비슷한 행보를 걸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장녹수'와 '김개시'다.
이 둘은 왕비나 후궁의 공식적 지위에 오른 적은 없었지만,
왕의 총애를 통해 궁궐 안팎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했던 왕들인 '연산군'과 '광해군' 모두 반정으로 쫓겨났고, 이 여인들 또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역사는 늘 권력과 사랑이 뒤섞인 비극을 잔혹하게 기록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또다시 보고 있다.
그 주인공은 앞서 말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조차 '윤석열' 보다 '김건희'의 이름이 더 자주 오르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짧은 시간 동안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편 윤석열은 스스로 친위쿠데타 일으켜 새로운 권력구도를 만들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감방에 들어가 법의 심판대에 서있다. 김건희 또한 남편과 같은 길을 걸으며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야사에는 장녹수와 김개시가 백성들의 분노 속에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달라 조선의 여인들처럼 이런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은 없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할 수 있는 처지는 만들어졌다.
이러한 것은 ‘권력의 정점 곁에 선 여인’이라는 공통된 자리는
여전히 냉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역사는 반복되는 듯하다.
그녀들의 권세는 찬란했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 여인 모두 공적 권한은 없었으나, 그 어떤 공식 권력자 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끝은 모두 비슷했다.
과욕이라는 권력의 무게가 그녀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세 여인의 공통점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꿰뚫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고권력자들 고독과 불안을 이해하고, 그 감정 빈틈들을 포근히 감싸며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실록은 '장녹수' 외모에 대해 “뛰어나지 않으나 사람을 매혹케 하는 기품이 있었다”라고 전한다.
그녀는 궁에 들기 전 기생으로 살았고, 이미 가정과 자녀가 있었던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군 마음을 얻은 것은, 그녀가 세속의 현실을 꿰뚫고 사람의 심리를 다룰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개시 또한 외모는 궁녀들 사이 평균 이하라는 기록이 있다시피 보잘것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략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본래 선조를 모시던 상궁이었으며 후궁은 아니었지만 선조와 그런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훗날 광해군의 곁으로 옮겨 보좌하며 광해군을 모시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을 한 치마폭에 감싼 김개시 능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야사에는 선조 죽음과 반정 비밀에 김개시가 얽혀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그녀 지략이 뛰어났으며 시대 중심에 서 있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반정이 성공하자 진실을 아는 자로서 그녀는 곧바로 제거되었다.
김개시는 시대가 만든 여인이었고 시대가 삼킨 여인이었다.
김건희 역시 시대는 다르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의 언어’를 이해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과거와 행보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도 힘든 여러 말들이 난무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한 남자를 사로잡았고, 대중의 시선을 움직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좋고 나쁜 것을 떠나 화제성과 상징성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현대사적 존재가 되었다.
한 시대 최고권력자 곁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과 권력 속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그 속에서 탄생하는 비극은 늘 비슷한 형태를 띤다.
사랑이 권력 언어로 변하는 순간,
그 관계는 아름다움보다 위험에 가까워진다.
역사는 냉정하다.
장녹수도, 김개시도 그리고 김건희도 자신의 시대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으나 결국 욕망의 불길 속에서 소멸했다.
아마 수십 년 후에는 김건희 또한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녀 이름은 누군가 상상 속에서 또 다른 장녹수, 또 다른 김개시로 재해석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된다.
평범하게 살다 조용히 잊히는 삶이 나을까, 아니면 굴곡진 삶을 살며 좋든 나쁘든 역사 속 이름으로 남는 삶이 나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백 년이 지나면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스쳐가는 바람처럼 잊히고 만다.
그 점을 생각하면 비록 비극적 이더라도 이름을 남긴 여인들은
어쩌면 시대가 낳은 가장 강렬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김건희는 지금 감옥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과 닮은 장녹수와 김개시를 떠올려 보고 있을까?
혹은 여전히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