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흐른다 883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83
ㅡ 역사 속 '고려장'과 우리 세대 노인복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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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도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노후를 걱정할 때 경제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고민은 건강입니다.
아직 마음은 청년 같고 몸도 별다른 이상은 없지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몸과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어머니를 보내고 이제 두 달이 되어갑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94세까지 사셨지만, 마지막 5년간 경증치매로 가족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2년 전부터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이 70, 80세에 중증치매가 찾아오고 몸까지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면 본인도 불행한 일이지만 자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자녀들이 요양원에 모신다고 해도 마음의 부담과 경제적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오는 동안 항상 존재해 온 오래된 숙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상황에서는 ‘고려장’이라는 제도를 활용했다고 전해진 말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고려장' 이야기와 우리 세대(베이비부머 세대) 문제를 풀어보려 합니다.
제가 10여 년 전 도의원 시절 써서 지역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인데, 후에 비슷한 내용으로 칼럼을 부탁받아 좀 더 손 봐서 다시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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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고려장과 우리 세대 노인복지 문제 ㅡ
우리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동방예의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에 대한 효를 중시해 왔다.
특히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시대로 성리학 근본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실천하는 사회였다.
조선시대는 대가족중심 사회였던 만큼 가정 내에서 노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당시 조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노인복지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 흔히 알려진 ‘고려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고려장’은 자녀들이 병든 부모를 산속에 버려 굶어 죽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우리 초중고 시절 때부터 그렇게 배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전혀 아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날조된 이야기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속된 의미 ‘고려장’이라는 말은 역사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일부 조선·고려 문헌에서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부모를 버리는 제도’ 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고려시대까지 일부 기록에 있는 '고려장'은 전염병 환자를 산속으로 보내던 풍속이었다. 그러나 이는 병자를 격리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부모를 버렸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당시 사회에서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함께 매우 엄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부모를 산속에 버리는 풍속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 이야기는 일제가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기 위해 만든 허구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 조상 무덤을 도굴하려 했지만, 효를 중시하는 조선인 인부들은 이를 꺼려했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악용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만들었다.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버리는 못된 풍습이므로 이런 무덤들을 파헤쳐도 된다.”
이처럼 얄팍한 수법으로 속된 의미의 ‘고려장’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이를 역사적 사실로 잘못 받아들였다.
이 부분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제가 만들었다는 속된 의미 ‘고려장’이 새로운 의미로 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저출산과 기대수명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젋은인구는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 장래 인구추계(2011)에 따르면, 한국은 2017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감소하며,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됐다. 2030년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인 인구감소 시대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한국의 출산율은 0.72명으로,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의 삼분의 일 수준에 불과하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급격한 인구감소로 인해 국가소멸 가능성까지 경고되고 있다.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는 2020년부터 본격적인 노년층으로 진입하게 되며 이로 인해 노인복지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바로 내 문제, 베이붐세대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 ‘한국 베이비붐 패널 연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76.6%가 경제적 은퇴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로 나타났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거나 미흡하다고 응답한 비율: 61.1%
저축이나 투자 계획에 차질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 15.5%
충분한 은퇴자금을 마련했다고 응답한 비율: 6.1%
즉 이 수치로 봤을 때, 노인은 늘고 일할 사람은 대폭 줄어든 지금의 젊은 세대가 다수 노년층을 책임지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노인복지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 세대가 속된 의미의 현대판 <사회적 고려장>을 당할지도 모를 첫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우리 모두 지금부터라도 준비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ㅡ 전 전남도의회 운영위원장 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