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by 최정환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참 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그런 이웃이 있다.

월곡 연립 비동 207호는 우리 집 주소다. 아내는 월곡 연립으로 부르면 없어 보인다며 굳이 월곡 빌라로 부른다. 80년대 초반 지어진 월곡 연립은 A, B동으로 된 3층 집이다. 넓은 주차장 사이로 작은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텃밭은 여름이면 상추와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로 가득 넘친다. 작은 텃밭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고 더불어 식물과 곤충의 세상 안에 자연의 이웃으로 어울려 사는 법을 일러준다.


우리 집 아래층 107호에는 또 다른 이웃이 산다.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폐지를 모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룻밤 사이 여러 집에서 나온 폐지와 재활용품으로 1층 출입문 구석을 가득 메운다. 할아버지는 쇠똥구리가 똥을 빚어 굴리듯 연신 종이를 굴려가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눈 깜짝할 사이 얇은 종이가 모여 리어카를 가득 채우면 그제야 이만하면 됐다며 행복에 미소를 짓는다. 그 곁에는 언제나 삶에 반쪽을 채워내는 할머니가 있다. <비 파트낭>이 그랬던가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단 한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삶에 깊이가 더해갈수록 늘어가는 나이를 잊게 하는 것은 부부가 함께 늙어가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은 두 꼬마 아들과 식구들로 조용할 날이 없다, 꼬맹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사방팔방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러대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우울한 데로 울부짖으며 난리를 피워댄다. 층간 소음으로 이웃사이에 다툼이 많은 요즘 세상에 두 노부부는 한 번도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미안함을 알면서도 이해해 주시겠지 라며 흘려보낸 세월이 어느덧 5년째.

나 같았으면 진작 불편한 마음에 몇 번이고 따지고 들었을 터였다. 두 노부부는 아무 말 없이 어찌 지내셨을까?

윗 층 가족에 시끄러운 일상을 마주하며 노부부는 아마도 이런 마음을 가졌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를 자식처럼 생각해 애처로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보듬었거나, 우리 아이들을 떨어져 지내는 손주들의 재롱으로 여기고, 노부부의 젊은 시절 자식을 키우던 그때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어김없이 폐지를 모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노부부에게 이 순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두 분 덕분에 지금껏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음을, 두 분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감사드린다고.

매일 당신과 동행하는 이웃의 길 위에 한 송이 꽃을 뿌려 놓을 줄 안다면, 지상의 길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다. <R. 잉글레제>의 말처럼

먼 훗날 새로운 이웃과 층간 소음으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긴다면 오늘을 기억하며 참을 인자가 아닌 동행하는 마음의 꽃을 심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얻은 나눔에 씨앗을 뿌리고 좋은 사람과 좋은 만남과 인연,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는 나는 참 운 좋고 행복한 사람이다. 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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