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삶은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의 되돌림이라 했던가. 때로는 새로이 삶의 기회를 얻으려는 이를 만나고, 때로는 그렇게 힘겹게 걸어온 삶의 끝자락을 뒤로하려는 이들을 위로한다.
어둠이 짙게 깔린 야심한 밤. 성북구 골목 작은 가게를 찾아 나섰다. 가게 주변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불 꺼진 곳이 눈에 띄었다. 아직 가게 문을 닫기엔 다소 이른 시간. 이곳저곳 다닥다닥 붙은 음식 사진 뒤로는 군데군데 빈 가게 유리에 임대문의 현수막만이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듯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40대 부부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내 마음, 내 멋대로 콘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고, 아기자기한 쿠키를 버무리면 비로소 하나에 예술작품이 만들어진다니 손님들이 좋아할만하겠다. 이제 문을 연지 일주일째.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말해주듯 가게 곳곳에는 두 부부의 노력의 흔적들이 깊게 배어 있었다.
살짝 무더운 저녁. 습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곤충들이 환한 불빛을 찾아 나서듯 손님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매장으로 이어졌다. 북적북적 붐비는 틈을 벗어나 잠시 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발이 이끄는 곳으로 한 발, 한 발 움직여 어느새 동네 한 바퀴를 돌 무렵. 골목 사이사이 백종원의 사진이 붙어있는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문득 평소에 즐겨보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떠올랐다. 장사가 안 되는 식당을 찾아가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동행의 여정. 때로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마음을 보듬어 주다가도 잠시라도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얼을 빼듯 혼쭐을 낸다. 골목식당을 보는 이들은 열악한 삶의 현장을 마주하며, 조금 다가가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 힘든 고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과정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많은 이들의 삶을 위로한다. 백종원이 지닌 진정성과 매력이라고나 할까. 장사꾼이 아닌 작은 가게의 경영인을 만들려는 노력. 그것은 음식을 잘 만드는 노력을 넘어 한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일이다. 마음이라는 작은 씨앗에 물을 뿌리면, 생각이 자라고, 말과 행동의 싹을 틔운다. 그것이 자라서 작은 가게를 꾸려가는 인생철학이 만들어진다.
서늘한 밤바람을 뒤로한 채 아이스크림가게로 들어서자 때마침 골목식당이 방송되고 있었다.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불현듯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방송 출연의 도움을 받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방송에 참여할 수 없는 수많은 가게들은 백종원의 도움의 손길에 앞서 그가 경영하는 수많은 브랜드와 가맹점과 생존의 경쟁을 펼쳐야 할 텐데. 오늘따라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1년에 100만 명의 창업과 85만 명의 폐업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800만 명 중 20.3%, 550만 명의 자영업자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중 400만 명은 1년 365일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홀로 가게를 지켜내며, 170만 명은 연간 매출액 4,800만 원(월 매출액 400만 원) 이하 생계형 자영업자의 삶에 허우적댄다.
최저임금 인상, 상가 임대료 인상, 원재료비 상승, 근로시간 단축에 코로나 태풍까지 첩첩산중이니 그들의 삶이 고단 할 수밖에.
22개 브랜드와 천여 개가 넘는 가맹점. 1200억 매출(2019년 기준)에 249명의 직원을 둔 기업의 대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저 먹고살아보겠다고 장사를 시작한 이들에게는 그는 어떤 존재일까?
장사의 신, 골목식당을 이끄는 미다스의 손, 선의의 경쟁자....
자본의 힘과 시스템, 조직의 힘으로 경쟁하는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한 사람이 감내해야 할 역할과 고통이 너무도 큰 건 아닐지. 자본주의 시대 선의의 경쟁이라 말하기엔 너무나 큰 힘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돌아오는 길 어두운 거리를 밝히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임대문의 현수막이 아른거린다.
서로를 의지한 채 가족의 삶과 꿈을 키워가는 그곳에서 두 사람과 가족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수줍은 미소가 순수했던 부부의 그 미소가 오래오래 변치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