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침부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중견건설사에 다니는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근심을 털어놓았다. 40대 중반에 새로운 삶, 나다운 삶에 대한 고민의 이야기.
10년 전 나도 그랬다. 결혼 후 8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둔 기억. 우스갯소리로 사기 결혼이 아니냐며 의아해했던 주변 사람들. 30대 중반 그때는 왜 그랬던지. 언제부턴가 회사생활이 감옥이라도 된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미지의 신세계를 향한 꿈틀거림은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갈망했다. 그렇게 나다운 삶을 꿈꾸며 회사를 떠났다. 이상과 현실의 다름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간 돈을 벌지 못했다. 경제적 궁핍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자존감과 자신감은 바닥을 향해 끝없이 추락했다. 회사원으로 바라봤던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의 존재를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자기 감옥에 산단다.
쇠사슬에 묶인 아기 코끼리를 나무에 매어 놓으면, 그곳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이내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챈다. 시간이 흘러 나무를 뿌리째 뽑을 만큼 힘이 세어지지만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에 매인 어른 코끼리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생을 다한다.
바깥세상에서의 홀로서기란. 아프리카 초식동물의 삶과 같다고나 할까. 넓은 초원을 내달리는 자유의 기쁨은 무한한 행복이다. 그것의 대가로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 혹한의 자연환경을 견뎌야 하고,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육식동물과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살아야 한다.
홀로서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높은 꼭대기에 올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아래를 바라보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도 그랬고, 다른 사람도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번지점프를 하듯 그냥 뛰는 거다. 그래야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그곳을 향해 뛰는 것. 그래야 비로소 계곡 아래를 마주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현재에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답게, 자유롭게, 때로는 내 멋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다. 혹여나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상상해보라. 넓은 들판과 대초원을 내달리는 가젤의 모습을. 내 몸 안에 숨겨진 온 힘을 다해 원하는 곳으로 질주하는 삶. 그것이 진정 나답게 살고,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