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에게 명함을 선물했다. 두 아들이 남과 다른 삶을 살기를, 무엇보다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 하루를 들여다봤다.
아침 일곱 시. 학교 예습과 복습, 등교 준비로 긴 하루의 여정이 시작된다. 여덟 시에서 오후 세시까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이어 저녁 열 시까지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공부한다. 집에 돌아와 밀린 숙제를 끝내면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숨 돌릴 틈 없던 긴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 네 시간 반의 짧은 휴식 뒤에는 또다시 긴 하루가 기다린다. 작은 틈새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이들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오 학년 초등생의 하루 일과로 미소 짓기에는 너무도 빡빡한 삶.
92.7%의 아이가 사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느끼는 행복과 삶에 만족도가 꼴찌인 현실(60.3점,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공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행복보다 불행을 먼저 배우고, 그렇게 불행한 삶에 숙명을 받아들일런지 모른다.
어린 시절 자연은 내게 놀이터이자 벗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주워 비석 치기를 하고, 땅바닥 흙을 모아 집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쩌다 한번 동네 친구들과 개천이라도 가는 날이면, 양동이 한 가득 물고기와 개구리를 채워왔다. 집집마다 마당을 지키던 누렁이와 백구는 가족이자 삶에 일부였던 그 시절. 자연의 벗과 하나 된 어린 시절은 그렇게 행복했고, 그런 삶이 지금에 나를 만들었다.
오늘에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공부해야만 하는 그런 삶 어디에도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난히 햇살 좋았던 어느 날.
얘들아 아빠가 선물 준비했거든. 너희들 명함이야.
그게 뭐예요. 이건 어른들이 일 할 때 쓰는 거잖아요. 애들한테는 별로 필요 없는 거 같은데. 명함이라는 게 꼭 어른들이나 일하는 사람만 쓰는 건 아니거든.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그 인연을 간직하기 위함이기도 하지.
그럼 우리는 명함을 어디다 써요.
책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소중한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때면 하나씩 꺼내 소개하는 거야.
미해와 머스마들 씩씩이사(태명) 라고 씩씩하게. 우리 가족이 모여 만든 가족협동조합이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말해보는 거야.
그럼 같은 반 친구 연승이한테 먼저 줘야겠어요. 나에게 소중한 친구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남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스스로의 존재감과 삶에 가치를 담아 소중한 이와 인연을 맺고 그렇게 원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같은 길을 걸으면, 같은 삶이 되풀이될 수밖에. 10년 뒤 아이들이 자라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면. 적어도 남과 다른 삶, 나를 위한 삶, 그래서 비로소 나다운 삶을 이야기하는 행복한 아이들이 되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