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가난의 품격

부와 가난의 품격

by 최정환

최상의 사람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다. 그다음 사람은 가난을 잊어버린다. 최하등의 사람은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해 감추거나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을 호소하다가 가난에 짓눌려 끝내 가난의 노예가 되고 만다. 또한 최하등보다 못난 사람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간다. <이목구심서>

주택가 한편 작은 도로는 마치 이글거리는 불덩이처럼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모퉁이 한 구석 종이박스를 쌓아 올린 작은 손수레가 보이고, 뒤로는 푹 눌러쓴 모자가 무겁기라도 한 듯 고개 숙인 할머니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얼마나 힘들었길래. 그늘도 없는 거리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는 걸까.


할머니는 언제부터 남들이 쓰고 버린 종이를 주워 하루하루에 삶을 이어왔을까. 폐지 1kg을 모으면 70원을 번다는데. 하루 오천 원을 벌기 위해서는 내 몸무게만큼인 74kg을 주워 고물상으로 옮기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언뜻 보아도 10kg이 채 안 되는 종이. 얼마나 더 주워야 할머니의 고단한 하루가 끝날지.


따사로운 어느 날 아침에 일이다. 이리저리 놀고 있는 물고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밥숟가락 들기를 몇 번 반복할 무렵. 아들의 생뚱맞은 물음이 휘리릭 내 귓속에 파고들었다.

아빠 우리 집 부자예요. 밥 먹다 말고 웬 부자 타령이란 말인가.

친구네 집은 부자거든요

할머니가 슈퍼도 하고(다섯 평 남짓) 에어컨도 큰 것 하나 있고, 고양이 두 마리에 강아지도 한 마리 있어요. 그럼 부자 맞죠. 우리 집에도 뽀송이(막내아들)와 열대어(50마리), 달팽이 한 마리에 차도 두 대나 있으니 부자네요. 부자의 기준을 생각해 본 적 없던 터. 엉겁결에 우리 집이 부자 맞지. 하하하 너털웃음과 맞장구를 쳐가며 웃어넘겼다.


한 온라인 뉴스 채널에서 얼마 정도가 있어야 부자인지 물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10억.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번 돈은 486만 원, 241만 원을 쓰고 117만 원을 모았다. 월 117만 원씩 854개월(71년)을 모으면 10억이 생기니, 47살인 내가 지금부터 모으고 118세까지 살아있다면 10억 부자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 10억이 부자의 기준이라면 적어도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역사상 최고의 거부인 록펠러 회장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돈이 충분한 것입니까?”라는 물음에 “조금만 더요.”(Just a little more) 라 말했단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부를 충족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없는가 보다.


아들이 우리 집이 부자인지 또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부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재산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부자와 재산은 적지만 마음이 넉넉한 부자가 있다고. 재산이 넉넉해도 출세와 권세, 이익 앞에 비굴한 사람이면 가난한 사람이니 돈이 많다고 부자는 아닌 게라고. 가진 돈이 적어도 출세와 권세, 이익 앞에 비굴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부자인 거라고.


폐지를 줍던 할머니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남이 버린 종이를 목숨 삼아 살아가는 삶을 가난이라 말할 수 없는 건, 그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비굴하지 않게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때 만난 할머니가 마음부자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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