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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대포항, 지금은 장사항

by 초마

내가 대학3학년이었을 때였다. 딱 이맘때였고, 11월의 어느 오후의 학교 건물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그 당시는 전화기가 없었고, 삐삐라고 하는 호출기만 있을 때였는데, 친구들과 동아리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갈까 말까 하고 있던 중이었다.


"8282828282"


일단 음성 메시지에 8282라는 숫자가 잔뜩 써 있는 호출이 와서 1층의 공중전화로 내려가서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다.


"언니, 지금 빨리 와! 우리 지금 속초 갈 거야! 언니 빨리 안 오면 엄마랑 나랑 둘이 갈 거니까 1시간 안으로 와!"


그때 시간은 5시가 다 되어가는 오후였고, 일단 음성메시지를 듣자마자 나는 집으로 번개같이 달려갔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나의 학교는 지금은 버스가 엄청 많아지고 이곳이 그곳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였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분당이었던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고, 신갈까지 가는 스쿨버스를 타고 나간 다음, 신갈에서 다시 버스를 타거나 오리역인지 미금역인지까지 가는 스쿨버스를 타야 했다. 아마도 마지막 스쿨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나를 빼놓고 간다는 그 한 마디에 정말 번개처럼 달려서 스쿨버스를 탔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아주 급격하게 상황이 변했다. 나와 동생은 과외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했던 시기였다. 그 순간 점점 안 좋아지는 우리 집 상황에 매일 즐거울 수는 없었지만, 엄마는 늘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셨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아주 가끔 기분전환차 떠나는 여행에 빠질 수는 없었다.


"엄마, 우리 숙소는 어디야?"


"몰라, 그냥 가는 거야!"


일단 우리는 아빠가 남겨준 유산 중 그나마 제일 나았던 소나타 2.0을 타고 속초로 떠났다.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는 유산보다 빚이 더 많았고, 한정상속을 받기도 전에 모든 빚이 엄마와 우리에게 다 넘어온 탓에, 잘 알지 못했던 우리의 무지를 탓하며 우리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또 해볼 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 엄마의 숨통이 되어준 것이 바로 자동차였던 것이다.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서 숨쉬기조차 힘든 날, 엄마의 차는 엄마의 날개가 되어 주었고, 그렇게 가끔씩 엄마는 바람을 쐬러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속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고, 그 당시는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잘 뚫려 있지도 않았었기에 엄마는 꼬불꼬불 미시령 고개를 밤 운전이었지만 가뿐하게 넘어서 속초에 도착했다.

우리의 숙소는 아마도 어느 모텔이었을 것 같다. 찜질방에서 자자고 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잠은 편하게 자야 한다고 근처의 모텔에 들어가서 셋이서 기분 좋게 속초를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 날 우리는 속초 바다를 보면서 마음도 뻥 뚫렸으니 돌아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속초에 왔으니 맛있는 광어회 한 그릇 먹고 가자고 우리를 이끌었다.


그 당시 우리의 경제적 상황은 여유롭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냥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는 속초까지 왔으니 회 한 그릇 먹고 가자고 해서 대포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 대포항은 한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하면서 회를 먹는 손님들을 향해 호객행위를 했고, 우리는 어느 친절한 이모의 안내로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30년 전 그날, 엄마와 동생과 나는 광어회를 대포항에서 먹으면서 깔깔대며 그동안의 힘듦과 어려움은 다 잊고, 우리들만의 속초를 즐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운전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지만, 엄마는 전혀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았고, 우리와 함께 속초 여행을 와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는 말씀만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또 이렇게 자주 다니자고 하면서..


회를 먹고 느지막이 출발한 우리는 또다시 미시령 휴게소에서 멈추어서 속초 쪽을 보면서,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왔던 30년 전의 대포항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그렇게 나는 속초와의 사랑을 그때부터 시작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과의 결혼 후, 유달리 우리는 강원도로의 여행을 즐겼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강원도여행가족이 되었다. 많이 다닐 때에는 1년에 10번이나 강원도 속초, 강릉 쪽 여행을 다닌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속초에 자주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님께서 한화리조트 회원권을 가지고 계셔서 가능했던 것 같다.


남편과도 늘 답답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 콘도 빨리 알아봐!"


하면서 콘도가 가능한 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가능한 주말에 바로 떠날 계획을 잡는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잠시 쉬고 있는 남편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답답함이 많았던지 속초를 한번 갈까? 하는 말에 나는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그래, 우리 여름에 가고 안 갔었네! 가자!!"


사실, 회사 일도 바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도 있었지만,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속초행을 제안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기에 바로 동조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첫째의 영어학원에 지장이 없는 토일월로 계획을 잡았고, 어머님께서 토요일에 김장을 하신다는 말씀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 계획을 바꿀 수는 없었다. 허리디스크에 회사에 모든 것이 다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는 남편에게 이것 때문에 안된다, 그런 말로 왠지 기를 꺾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작은 배려였다.


김장은 오전 안에 끝냈고, 우리는 점심을 먹고 속초로 향했다.

다행히 첫날 우리가 김장으로 늦게 출발한 것이 아쉽지 않게, 늦게 도착했던 속초는 날이 흐렸었기에 나름 위안이 되었다. 그다음 날, 새파란 하늘을 마주하면서 제일 먼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 워터파크나 여름 해수욕장이 아닌 속초 바다 아니 속초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우리는 하루를 제대로 신나게 보내고, 저녁에는 인기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예약했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도 먹거리는 블로그 체험단에 선정이 되어서 큰 비용 없이 속초를 즐길 수 있음이 감사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게는 신청에서 떨어졌지만, 그래도 첫째가 좋아하는 회는 여행 첫날 체험단 선정 연락을 받아서 기분 좋게 회를 즐기게 된 것이다.


30년 전 그리고 지금,


사실 지금은 그 예전처럼 절박하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나는 속초에서 회를 먹으면서 30년 전 생각이 많이 났다. 힘들어도 또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던 그때가..


엄마가 좋아하는 멍게를 보면서, 또 우연치고는 필연처럼 멍게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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