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이 집에 산지 벌써 12년 차이지만, 야시장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 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2년여 전부터 아파트 부녀회장과 관리소장이 계속 바뀌는 와중에 아파트 단지 안에 요일별로 푸드트럭이 오기도 해서 내심 내가 좋아하는 메뉴의 푸드트럭이 오는 요일은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내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푸드트럭이 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던 우리에게 신세계가 열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단지 내 야시장이 열린 것이다.
아파트 내 야시장이라고 하면, 추측으로는 과일 같은 것을 팔거나 먹거리를 파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시장은 아이들의 천국 같은 작은 놀이동산을 옮겨온 것 같았다.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10년 동안 한 번도 없었으니, 아마 아이들의 또래 친구들도 다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게 2년여 전부터 시작된 야시장은 이 동네 아이들의 용돈을 싹싹 긁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들이 지갑을 탈탈 털어버리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일 텐데, 그래도 해줄까?"
유원지나 놀이동산에 가면 늘 있는 풍선 터트리기는 누가 하냐면서 돈 아깝게 저런 것을 왜 하냐고 늘 그냥 지나쳐 온 우리였지만, 동네에 열리는 야시장에서는 분위기가 다르다.
"엄마, 나 풍선 터트리기 할게!"
"그래, 그럼 정말 한 번만 해, 누나랑 같이 해!"
"싫어! 따로따로 할 거야!!!"
이미 아이들의 손에는 사장님이 주신 컵 안에 화살촉이 들려 있었고, 사장님은 얼른 계산하세요 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사실 몇 번 안 던지고 5천 원이라면 정말 너무 돈 아깝지만, 야시장에서는 분위기 탓에 너도 나도 하는 분위기라 무조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5천 원을 내고 풍선 몇 번 터트리면서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의 장난감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오는 것이지만, 모두가 풍선이 터질 때마다 손뼉 쳐주고 으쓱해하는 그 분위기에 아이들은 더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어제도 말할 것도 없이 둘째 초콩이는 제일 먼저 풍선 터트리기부터 야시장 투어를 시작했다.
몇 번의 야시장을 겪으면서 어떤 야시장 주체가 아파트에 오느냐에 따라서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이번에 온 야시장은 우리 단지가 아닌 좀 더 큰 근처 아파트 단지에 열려서 그런지 더 많은 먹거리와 놀이가 들어와 있었다. 어떤 야시장 풍선 터트리기는 금액에 따라서 던지는 화살도 갯수가 달랐는데, 어제 온 야시장은 7발에 5천원이다.
다만 꽝이 없기에 엄마들도 그냥 지갑을 열어주는 것이고, 나도 기분 좋게 첫 스타트를 끊어주었다.
그렇게 4개의 풍선을 터트리고 초콩이가 고른 것은 뿅망치였다. 사진 한 구석에서 보이는 이상 이상한 말랭이보다 차라리 뿅망치가 더 낫다고 싶었다.
그다음 코스인 VR은 아이들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지만, 초콩이는 다이나믹한 영화를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팔짱을 끼고 표정 변화도 없었다. 아무래도 서울랜드에서 그동안 VR을 보면서 경험을 쌓다 보니 웬만한 이동식 VR 영화관에서는 그 스케일에 차이가 있어서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하이라이트는 월미도보다 더 아찔한 바이킹이다.
겁은 많지만, 이번 여름 서울랜드 바이킹까지 경험을 한 초콩이는 늘 용감하게 바이킹 맨 뒷자리에서 타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도 무조건 뒷자리를 선택했는데, 사장님께서 누나들 옆에 낑겨 앉는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신나게 놀고선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초콩이의 단짝 친구! 그 친구도 바이킹을 찐으로 즐기는 친구였기에 1학년 꼬마들의 바이킹은 한번더! 가 되었고, 그렇게 초콩이의 아찔한 바이킹은 누나에게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2번을 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서울의 잠원동에서 살던 대림아파트에도 그 당시 간헐적으로 야시장이 열리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에게 오늘 저녁은 야시장에서 먹자고 했던 것처럼, 나도 엄마에게 오늘 저녁은 야시장에서 먹자고 조르곤 했다.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를 목이 빠져라 아파트 집 앞 복도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언제 오나 기다렸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전화로 어디에 오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물어보면 되지만, 그 당시에는 엄마가 퇴근하면서 전화를 하면 대략 도착할 시간쯤부터 미리 나가서 엄마, 아빠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그때, 우리 동네 주차장에 왔던 야시장은 이름이 달랐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비슷하게 과일, 야채 등을 낮에는 팔았던 것 같고, 저녁이면 포장마차처럼 술안주와 저녁거리를 테이블을 놓고 팔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곳에서 무섭기만 했던 아빠에게 다정한 첫 술을 배웠다.
아빠는 언젠가 내가 술을 마시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면서 극구 엄마가 말리는데도 나에게 술을 알려준다고 우기셨다.
내가 마신 첫 술은 파전에 잘 어울리는 동동주였고, 나의 동동주의 첫 느낌은 달달하고 새콤한 듯하면서도 맛있었다.
그렇게 작은 한 사발을 반 그릇쯤 마시고 나는 기분 좋다를 여러 번 외치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동네 창피하다며 아빠를 닥달하셨다.
그리고, 나는 밤 새 잠이 안 와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나의 첫 술은 아빠에게 그렇게 배웠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 야시장이야기를 쓰다가 아빠가 불쑥 생각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