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언제나 편 나누기를 좋아한다. 편 나누기라기보다 클럽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늘 감기에 걸린 듯 비실비실 하다고 해서 나는 비실클럽 대장, 남편은 튼튼 클럽 대장이다. 아이들은 때에 따라서 첫째가 보기보다 감기도 안 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튼튼 클럽의 베스트 멤버였고, 둘째는 일단 뛰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 핑계를 대고 잘 안 하려고 해서 나와 같이 비실클럽의 멤버였다.
아이들은 비실클럽보다는 튼튼 클럽이 되면 더 좋아했고, 남편은 은근히 그런 튼튼 클럽이 많아지는 것을 즐기면서 아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MBTI로 나누어지는 클럽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나는 초 울트라 대문자 F이다. 아주 어릴 적 엄마와 동생과 드라마를 보면서도 혼자서 엉엉 울어서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쓰고, 그다음 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운 적이 많았다. 대학생 때에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책을 보다가 슬픈 장면에 엉엉 울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 읽었던 책은 드라마로도 인기가 많았던 <남자의 향기>였다. 아마도 누군가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밖을 보며 그렇게 울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늘 드라마와 책을 보며 혼자도 같이도 잘 우는 성향이었고, 또 잘 웃었다.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성향이 내 마음에는 더 가득했고, 이런 나의 성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나의 대문자 F 성향을 딸이 닮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나와 같이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여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함께 공감하면서 울고 웃기를 내심 바랬다. 내가 어릴 적에 엄마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 기대와 다르게 나의 딸은 초 울트라 T 성향이다. 오히려 츤데레 성향인 남편보다도 더 T인 성향이 강해서 영화를 보면서 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어려서 공감하기 어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일단 영화를 보면서 접근하는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지난 방학, 둘째가 잠시 할머니집에 있던 일주일의 기간 동안 우리는 <소방관>이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웃기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초롱이는 내심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그 시기에 볼 영화도 없었고, 또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을 것이 분명한 그 영화를 보면서 나도 나의 감성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었다.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영화는 이런저런 재미있는 내용과 사건, 추억을 재미있게 재구성하면서 여러 웃음 포인트를 주었고, 슬슬 사건이 터지는 막바지 부분에서 나의 초 울트라 F 버튼이 눌러졌다.
슬슬 훌쩍이다가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서 나중에는 눈물 콧물을 닦아내면서 영화 속으로 초 집중 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보다 더 오열하였던 우리 앞줄의 관객이 있었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눈물 한 방울 아니 눈가가 촉촉하게 젖지도 않은 초롱이와 남편은 나보고 왜 슬프냐, 그저 불이 나서 진화작업을 하다가 소방관이 죽은 거 아니냐며 말하는 부녀를 보면서 나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과 초롱이는 아직도 우리 앞줄에 앉아서 오열하던 관객을 이야기한다.
"엄마는 그냥 운 것도 아니야, 슬쩍 눈물만 닦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지 아빠!
우리 앞에 앉은 언니 두 명 중에 한 명은 완전 엉엉 울었잖아!"
"맞아, 대성통곡하면서 우는데, 아니 그게 그렇게 울 일이야?"
"아니 아빠, 엄마는 왜 운 거야? 엄마 슬펐어?"
"초파, 그리고 초롱아, 안 슬퍼?????"
"아니? 그게 왜 슬퍼? 그냥 소방관이 죽은 거잖아! 조금 마음이 안 좋긴 하지만 슬프진 않던데?"
"그러니까, 좀 안됬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오열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혹시 가족이 소방관인가?"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리고 딸과 함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한 명의 아이가 있었다.
할머니 집에 가서 소방관 영화를 같이 보지 못했던, 나를 쏙 빼닮은 아들이다.
운동을 하러 가다가 예쁜 단풍잎을 발견하면 우리 가족 수 같이 꼭 4개를 모아 오는 초울트라 F 성향인 나와 찰떡궁합인 아들이다.
역시, 남편과 초롱이는 단풍잎에는 관심이 1도 없고 운동하러 나와서 딴짓만 한다고 핀잔만 주지만 나는 내심 나를 쏙 빼닮은 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엄마, 이 단풍잎은 시들기 전에 우리 코팅해서 책 사이에 껴 놓자!"
"엄마, 이 단풍에 예쁜 그림 그릴까? 아니면 엄마가 멋진 말 써줘! 그리고 코팅하고 싶어!"
내가 딸에게 듣길 바랐던 이 말들은 이제 초등 1학년인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팍팍한 튼튼 클럽들 사이에서 혼자 비실 거리는 비실클럽이 외롭지 말라고,
초울트라 F인 초콩이를 보내주셨나 보다.
앞으로 또 크면서 많이 바뀌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해서 언제나 다정하게 전화해서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초콩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앞으로 이런 다정함이 오래오래 변하지 않길, 그래서 요즘 나의 최애 드라마인 태풍상사의 '강태풍'처럼만 자라주길.. 그런 다정함이 몸에 배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