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서 나에게로 이어지는 순간
"엄마, 나 정말 시금치 먹으면 힘세져?"
내가 어릴 적 나는 많이 마른 편이었고, 나물과 야채를 더 좋아했던 나는 두 살 터울 동생과 싸울 때면 늘 힘에서 밀렸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왜 그렇게 동생과 치고받고 싸웠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늘 힘에 밀렸던 나는 동생에게 말로 약을 올렸고, 동생은 참다못해 나에게 힘으로 덤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두 살 터울이라 늘 동생 친구가 내 친구였다. 방학 때면 지금처럼 아이들이 학원으로 다녔던 것이 아니라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우리는 싸울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더욱이 엄마는 회사에 있으니 둘만의 싸움은 거의 매일이었고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것 아닌 것인데, 우리는 늘 싸웠고, 엄마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생에게 약 올리지 좀 마! 너는 맨날 입으로 동생 약 올리니 자꾸 너에게 덤비는 거 아냐! 싸우면 이기지도 못하면서!"
나는 사실 약 올린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동생과, 늘 옆에 붙어서 말하면서 참견하길 좋아했던 나는 그 시절 동생의 모든 행동이 나의 시빗거리이지 않았을까 싶다.
"언니! 가만히 안 둬! 거기서!!!"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날도 나는 동생과 싸우다가 힘으로 안되니 근처에 있던 손톱깎이를 슬쩍 동생 쪽으로 던졌는데, 그 손톱깎이가 하필이면 바닥에 한번 튕기면서 동생 다리로 튀어서 동생 종아리에 찍혔다.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무조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동생은 베란다로 통해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려고 베란다로 나가는 소리에 놀라서 창문도 얼른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쳐 버렸다.
"언니! 빨리 문 열어!! 가만히 안 둘 거야! 엄마에게 다 이를 거야!!!"
그 당시는 전화는 거실에 유선전화 한대만 있을 때니,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틈도 없이 혼자 방에 스스로 갇혔다. 그렇게 엄마가 올 때까지 무서워서 방문을 열지도 못하고 혼자 바깥 눈치만 보다가 잠이 들었었다.
엄마가 오고서야 나 역시 한차례 동생에게 위험한 손톱깎이를 던졌다고 호되게 혼이 나면서 이 사건은 끝이 났지만, 그 이후로도 비슷한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난 동생보다 힘이 세지고 싶었다.
"엄마, 나 힘세지고 싶은데 뭐 먹어야 해?"
"그럼 너도 고기를 많이 먹어야지!!!"
그런데 지금은 좋아하는 고기가 그 당시에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었나 보다. 그래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온 뽀빠이는 힘이 세어져서 올리브를 구해내는 만화를 보고서 내 눈이 반짝였다.
"엄마, 나도 시금치 먹으면 뽀빠이처럼 힘이 세질까?"
"그럼, 시금치는 영양가가 좋으니까 힘이 세질 수도!"
"그럼 엄마, 나 매일매일 시금치 해줘!!!"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시금치나물을 자주 해주셨다. 엄마의 시금치는 꼭 포항초로 만든 나물이었다.
"윤경아, 나중에 마트에서 포항초가 보이면 꼭 사! 너 어릴 적에도 엄마는 항상 포항초로만 나물을 해줬어. 포항초가 비싸긴 하지만 영양분도 많고, 엄마는 더 맛있더라!"
내가 결혼하고 난 후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닥 불쑥 엄마가 포항초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도 아마 우리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는 왜 그랬지.. 하는 추억소환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싫어! 엄마가 해줘! 난 엄마가 해주는 시금치가 제일 맛있더라!"
그렇게 엄마의 시금치를 제일 좋아했던 나는, 이제 요리는 잘 못하지만 시금치는 제일 맛있게 무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 지금 나 하나만 더 줘! 파란색 많은 부분으로!!"
"엄마, 왜 누나만 줘! 나도 빨리 먹고 싶단 말이야!! 난 더 큰 걸로 줘! 파란 거 많은 거로!"
"너네들, 이따가 밥 먹으면서 먹어!!! 지금 다 먹으면 어떻게 해!!"
"엄마, 난 엄마 시금치가 제일 맛있어! 그리고 지금 먹는 게 이따가 밥 먹을 때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