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알아주는 스레드
초파는 구직활동 중이다.
올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자마자 알려온 초파의 말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회사에서 연구소를 이제 없앤다고 하네. 이제 개발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될지 몰랐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이제 아이들이 대부분 중고등학교에 다니거나 이미 성인이 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늦은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아이들의 나이도 어렸고, 앞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들어갈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농담 삼아하는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둘째가 이제 8살이라 앞으로 10년은 훨씬 더 회사 다녀야 해! 그래서 난 가늘고 길게.. 그리고 열심히 할 거야!!"
남편도 역시 이전 회사에서 큰 일 없이 잘 다니고 있었지만, 회사 대표가 자꾸 바뀌고, 나름의 자회사끼리 합명을 하고 사업을 축소하고 바꾸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마음은 답답했지만, 일단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향력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회사 지인들에게도 남편의 취업을 부탁을 했지만, 최근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하드웨어 개발자를 충원하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따면, 당연히 배부장님 남편 분 뽑아야죠! 능력자이신데요!!"
이런 이야기를 추석 전에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엔 여유가 있었고, 남편도 한두 달은 쉬면서 천천히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고생하기도 했으니 실업급여받으며 조금 더 빠듯하게 지내면 될 듯 한 마음에 남편에게는 나의 불안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너무 기운 빠지기 전에 취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반드시 될 것이라 믿었었다.
다행히 남편이 집에 있으니, 여름방학에 아이들 점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서 재택근무를 2주 신청했다고 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추석 전에는 재취업이 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름휴가와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까지 지나고 나자 남편에게서는 조금씩 불안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때쯤부터 남편의 허리디스크도 통증이 심해진 것 같았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재취업을 하며 많은 이력서를 보내도 연락이 오지 않음에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날씨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면서 좋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서 눈치 빠른 첫째의 의심에서 벗어나고자 남편은 집 근처 지하철 역에 있는 카페로 가거나 도서관으로 가방을 메고 나가기 시작했다.
왠지 IMF 시절 많은 아빠들이 직장을 잃고 아침에 공원으로 도서관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생각나서 마음이 짠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데는 너무 작은 회사라 안 가겠다고 한 회사에도 다시 이력서를 내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스레드에 내 마음을 전하는 글을 썼다.
스레드는 진심이 가득한 글을 알아준다는 말에, 내 마음도 내 진심도 남편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고 싶었다. 아침에 글을 올리고,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점심 이후가 되면서 갑자기 조회수가 늘기 시작했다.
5천 명, 6천 명, 7천 명 이렇게 많은 스친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더욱이 저녁 8시경에는 거의 70명이 되는 분들이 나에게 남편에게 응원의 댓글을 진심을 담아서 보내주었다. 스레드의 힘을 느끼는 밤이었다.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그리고 나의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응원의 답글을 달아주고, 용기를 붇돋워 주는 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진심은, 남편이 취업이 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혹여 조금 취업이 늦어진다고 해서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모두의 진심에 정말 감사하다고, 그리고 그 응원에 꼭 기쁜 소식을 다시 전하고 싶다는 희망의 약속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