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엄마, 나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
학교가 끝나고 학원투어가 끝나고 나서 돌아온 초롱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 앞에 있는 나의 신발을 보고선 다급하게 말을 건넨다.
"왜? 무슨 말인데?"
"나, 손톱이.. 손톱이 뜯어졌는데....
그런데 엄마! 10월 말까지 나 손톱 절대 안 뜯어서 아주 길게 만들어야!
이번엔 진짜니까 믿어줘!! 내가 한번 해볼래!!"
설마 하고 예상은 했지만, 나는 보면서도 내 눈을 믿지 못했다.
작은 초롱이의 손 끝에 아이보리색 젤네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 밤에 다시 한번 손톱 뜯기 방지차 젤네일을 했었고, 지금은 월요일 밤이었으니 고작 하루 학교에 다녀오고 난 후 젤네일이 사라진 것이다.
"초롱이 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이게 뜯는다고 뜯어지는 것이 아닌데, 이게 뭐야????
젤네일을 도대체 어떻게 뜯은 거야?"
나도 젤네일 관리를 가끔 받아보았기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젤네일은 기존 매니큐어와 다르게 접착 강도가 세기 때문에 뜯어내지 않으면 쉽게 제거하기 힘들다.
또한 억지로 떼내게 되면 손톱에도 영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젤네일이 지금 초롱이의 손톱에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입으로..."
그렇지! 손톱으로는 뜯어낼 수가 없으니, 일단 이빨로 뜯어낸 것이 맞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이제 왜 뜯었는지, 지난번에는 1 달반 이상을 잘 유지했기에 손톱도 제법 자랐었다.
그런데 왜 학교에 간지 하루도 안돼서 이렇게 손톱을 다 뜯어버린 것인지가 궁금했지만,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혹시,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해서 그런 건가?'
"초롱이 왜 손톱 다 뜯었어? 이렇게 쉽게 뜯을 수 없는 건데 어떻게 뜯은 거야?"
"친구가 내 손톱이 이상하다고 했어. 그래서 학교에서 다 뜯었어........."
그렇다.
지난번 젤네일 손톱을 할 때에는 방학 때였고, 학원에 다니긴 해도 학교에 가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때이다. 누군가가 툭하고 지나가면서 한마디만 던져도 그 말에 초롱이가 흔들리거나 상처받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초롱이, 친구가 이상하다고 해서 속상했어?"
'응, 창피하고 싫었어. 엄마 미안해.."
4학년이라고 해서 내 마음속에서만 다 컸다고 생각했던 초롱이는 아직도 아이였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초롱이가 이젠 다 컸다 다 컸다고 믿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혼내는 것보다는 초롱이의 마음을 쓰다듬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롱아, 이건 부끄럽거나 이상한 게 전혀 아니야..
초롱이는 지금 왜 젤네일을 한 거야?? 손톱 뜯는 것 고치려고 우리가 젤네일을 한 거잖아. 그러니까 이상한 게 절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이건 부끄러운 것이 절대 아니야. 친구들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그러면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에는 부산에서 살았었어. 엄마는 서울에서 살고, 엄마는 사촌이모와 사촌동생들과 함께 부산에서 살았어.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학교에서 급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야 했어.
엄마 학교에서는 그때 '잡곡밥 먹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모는 도시락에 항상 흰쌀밥을 싸주셨어.
집에 사촌동생들이 너무 어렸고, 밥을 두 번이나 하기 어려우니 그냥 흰쌀밥을 싸가라고 하셨거든.
그런데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면 반장이 도시락을 검사했어. 누가 누가 잡곡밥을 안 싸 오고 쌀밥만 싸왔는지 말이야.
엄마는 늘 가방에서 늦게 도시락을 꺼내는 척하면서 반장이 친구들 도시락을 다 검사한 후에 슬쩍 올려놓고, 뚜껑도 열지 못하고 몰래 밥을 먹곤 했어.
하지만, 매일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반장에게 이야기하기로 했지.
"우리 집에는 아직 어린 사촌동생들이 있어, 그래서 이모가 집에서 밥을 두 번 하기 힘들고 하니 나는 잡곡밥을 싸 오기 힘들 것 같아!"
이렇게 일단 말하고 나니 내 마음까지 시원해졌었어. 그 이후로는 반장은 더 이상 내 도시락을 검사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내가 쌀밥만 싸 온다고 선생님이나 반장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어.
"초롱아, 이렇게 엄마도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나면 친구들도 모두 이해를 해줘.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초롱이도 친구들에게 또 누가 물어보면, 나는 지금 손톱 물어뜯기 치료 중이야! 그래서 젤네일을 손톱에 바르고 있는 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초롱이는 내 어릴 적 이야기를 반짝이는 눈으로 듣더니, 금세 이해를 했다.
"엄마, 나 이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게!!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할 거야!!"
우리는 다시 네일숍에 약속을 잡았고, 초롱이는 다시 젤네일을 바르기로 했다.
사실 이 사건으로 초롱이가 손톱을 안 뜯을 수 있을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까지는 손톱 뜯지 않는 것까지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초롱이의 마음도 충분히 자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물리적으로라도 뜯을 수 없게 해주고 싶었다.
4일 만에 다시 찾은 네일숍에서 담당 선생님은 바뀌었지만, 초롱이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초롱이의 마음을 토닥여주면서 괜찮다고 더 예쁘게 하자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다.
여러 명이 괜찮다고 하니 초롱이도 금세 웃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다. 역시 네일숍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는 곳이긴 한가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나의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네일 선생님의 말 한마디였다.
"초롱아, 그러면 친구들이 잘 모르게 티가 안나는 색으로 발라볼까?"
순간 내 머리가 망치라도 맞은 듯이 멍해졌다.
처음 초롱이에게 네일을 시켜주면서 무조건 손톱 뜯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에 예쁜 색으로만 발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롱이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초롱이는 너무나 싫었을 것이다. 엄마가 더 이상 자리를 믿지 못하는 것도 싫었을 것이고, 손톱에 네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초롱이가 손톱에 뭔가 바른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그런 초롱이에게 너는 손톱 뜯는 것 고치려고 이렇게 젤네일을 꼭 해야 해!!라고 했으니 그 작은 마음에 얼마나 큰 부담이 있었을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초롱이가 투명색으로 네일을 하고 난 후 반짝이는 손톱을 보고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아직도 나는 더 배워야 할 엄마라는 것을 깨닫는다.
"초롱아 오늘은 엄마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