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똘은 왜 그렇게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오?"
배똘이라는 별명은 초파가 결혼 전부터 나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나는 그 당시 회사에서 일처리도 뭐든 똘똘하게 해 내는 편이라 초파가 나의 성씨인 '배' 씨에 똘똘이를 이어 붙여서 배똘똘이라고 부르곤 했다. 배똘은 더 짧게 압축해서 부르는 나의 애칭이었고, 초파는 아직도 나를 배똘이라고 부른다.
때에 따라서는 배또리, 배똘, 배똘똘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부르곤 하는데, 사실 나는 이 애칭이 싫지 않다.
초파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바로 이번 설 명절에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을 내가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한 이야기 때문이다.
설 전날인 28일에 전국까지는 아니지만 경기 남부와 전라도 쪽은 눈이 많이 내렸다. 용인에 사는 우리 집도 거의 15cm 이상의 눈이 쌓였고, 서울에 있는 시댁까지 갈 때 차가 많이 밀릴까 봐 아침부터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아파트 앞은 눈이 쌓여서 지상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의 위로 아이들 팔꿈치까지 눈이 쌓여있었고, 아이들은 차에 타기 전에 쌓인 눈 속으로 점프를 하며 신나 했다.
"도로는 그래도 제설작업을 해서 괜찮겠지?"
평소보다 오래 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도 하나씩 사고, 커피도 사서 시댁으로 출발했다.
역시 아파트단지 앞 큰길까지 나오자 도로는 제설이 다 되어 있어서 운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T map은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것으로 안내를 했고, 왠지 분당수서에서 동부간선도로로 가는 길이 많이 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오랜만에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넌 후, 동부간선으로 가는 경로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기에 T map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덜 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울의 양재쯤을 지나는 데, 눈은 거이 멈추었고, 주변 풍경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주변은 눈이 온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출발하면서 눈이 많이 오니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말해두었는데, 서울은 눈이 오지 않았으니 왠지 겸연쩍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를 나오자마자 눈길이 없었고, 서울로 향하는 길도 많이 밀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시댁에 도착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들이 아침에 일찍 서둘러서 오니 배가 고플 거라면서 이른 점심 준비를 해 두셨고, 일단 우리는 얼른 점심을 먹고, 전 부치기를 하고 쉬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나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소파에 가져온 책 한 권을 들고 앉았다. 초롱이도 요즘 푹 빠져 있는 밀리의 소설을 보고 싶다며 내 옆에 패드를 가지고 와서 앉았고, 초파는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초롱이와 나는 둘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한마디를 하셨다.
"아니, 운전한 사람은 책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앉아서 온 사람은 잠을 자네, 너도 한숨 자거라!"
나는 아버님께 조금 쉬다가 이제 전 부쳐야 하니 그냥 책을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 한마디를 거드신다.
"원래 운전하는 사람보다 뒤에 앉아서 오는 사람이 더 피곤해!
운전하는 사람은 운전을 하면 되는데,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어!"
"전 부치는 거는 후다닥 잘하니까 조금 자고 일어나면 하게 두세요!"
순간 나는 내가 들은 이 소리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머님께서는 남편이 피곤해하니 한잠 자고 일어나서 전 부치는 것 시작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순간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은 물론 피곤해서 침대로 가는 아들이 안쓰러웠겠지만, 그래도 운전하는 사람보다 뒤에 앉은 사람이 더 피곤하다는 말은 나에게는 조금 서운하게 들렸다.
그리고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있었으면, 나도 운전하고 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운했지만, 남편은 어머님의 아들이니 아무래도 피곤해하는 모습에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잠시 잊고 전 부치는 것부터 계속 이어지는 설거지, 명절 준비를 시작했다.
어머님은 명절에는 더 많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픈 마음인 것을 나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차례를 잘 지내고,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점심을 후다닥 먹고 항상 엄마에게 왔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님은 더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셨다.
"너는 갈 데도 없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려고 하니?"
늘 명절마다 어머님은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고 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시댁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우리 가족이 얼른 나와서 우리만의 명절 즐기기를 더 좋아해 주었기에 우리는 늘 점심을 먹은 후 시댁을 나섰다.
명절날에는 동생네 가족과 저녁을 항상 먹는 루틴이었기에 우리는 동생네와 만나기 전에 서울의 박물관투어를 하거나 추석에는 창경궁을 방문하는 계획을 잡곤 했다.
이번 설에도 어머님은 남편에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게 말씀을 하셨다.
"A가 조카들을 보고 싶어 하는데, 저녁을 먹고 가면 좋을 것을, 왜 이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지. 갈 데도 없으면서.."
늘 듣는 말이지만, 명절에 갈 데도 없다는 말은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나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얼른 점심만 먹고 나와서 다른 일정을 잡자고 하는 것도 그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애써 못 들은 척, 모른 척하고 지내왔었다.
이번 설에는 동생네가 여행을 가는 일정이라 우리 가족은 집 앞 찜질방을 가기로 결정을 했었다.
사실 주말에 서울에서 공연을 보는 일정이 있었기에, 박물관 혹은 맛집 투어는 차가 막히는 설 당일보다는 토요일에 다녀보자고 하는 계획이었기에 우리는 명절 피로를 푹 날려버리도록 찜질방에 가기로 한 것이다.
찜질방에 누워보니, 문득 초롱이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왔던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은 또 꼬리를 물어서 어머님께서 나에게 했던 말들로 이어져서 초파에게 슬며시 말을 건넸다.
"초파, 나 어제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건 조금 속상했어.
운전하고 온 건 난데, 뒷좌석에서 가만히 앉아서 온 사람이 더 피곤하다는 말은 조금 서운하더라고."
그랬더니 초파가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배똘은 속이 왜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쏘! 그냥 그려려니 하고 넘기면 될걸, 왜 마음속에 꿍하니 담고선 말하는 거오!"
사실 그렇다. 내가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같이 좁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명절에는 엄마 생각이 더 나기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초파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그래, 나 밴댕이 소갈딱지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그렇지만, 엄마가 없다는 것은 참 서운하다.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엄마를 대신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찜질방에서 돌아와서 아이들과 본 '도그데이즈' 영화를 보면서 나는 또 혼자 눈물보가 터졌다.
엄마와 너무 닮은 배우 윤여정을 보면서, 2025년 설날을 보내본다.
그 순간의 내용이 슬프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영화 속에서 그리운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기에 눈물이 더 나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초롱이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속상하지 않길 바라며 오래오래 건강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