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마의 문화생활
굴러 떨어지던 돌도 때가 되면 멈추듯이,
이 세상은 언젠가 우리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사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얄궂지요.
언젠가 당신의 미래에 눈부신 빛이 비치기를
기원하고.
믿고.
확신하며.
왠지 계속되는 마음의 고단함 때문이었을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책이 읽고 싶었다.
출퇴근길이나 외근 중, 운동을 할 때 늘 듣던 자기 개발서가 아닌 소설 분야에서 골라보던 중, 왠지 표지에서부터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책이라 오랜만에 밀리의 서재에서 골라보았다.
최근 업데이트된 밀리의 서재는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다시 전자책으로 이어서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생겨서 듣다가 마음에 담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바로 읽기 모드로 변환해서 그 부분을 하이라이트 하고, 다시 듣기 모드로 바꾸어 이어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봄이 오는 3월경 일본의 급행열차 한대가 탈선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졌고, 이 대형 참사로 인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의 이야기와 마음 아픈 각각의 사연을 풀어가는 소설책이다. 모든 사고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 사연팔이를 하려고 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마음에 더 와닿았고 가슴 아팠고, 그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나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다시 가지게 된 책이다.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유념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읽으면서 또 나는 나의 기억 속으로 비슷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서 마음이 더 아팠던 것 같다. 특히 아빠의 이야기에서는 나 역시 아빠와 엄마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주인공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돼서 눈물 콧물 흘리게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 속에서 결말 스포가 나도 모르게 나올지도 모르니, 이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딱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어요."
나 역시 엄마와 아빠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 소설 속에서는 열차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떠내 보낸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유령열차가 보인다. 사고가 난 후 두 달쯤 후부터 '유키호'라는 유령과 유령열차에 대한 소문이 돌게 되고 그 유령에게 부탁을 하면 사고가 나기 전의 열차에 탈 수 있게 된다.
다만 유령열차에 타려면 네 가지의 규칙이 필요하다.
첫째,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탈 수 있다.
둘째,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셋째, 열차가 사고가 났던 니시유이가하마역을 통과하기 전 내려야 한다. 안 그러면 탑승한 나도 사고를 당해 죽는다.
넷째, 피해자를 하차하려고 하면 원래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조건으로 각자의 피해자 유족들은 유령열차에 탑승을 해서 피해자와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이야기,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야기, 짝사랑하는 누나를 떠나보낸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남편을 떠나보낸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음이 병든 건 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란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놈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거든. 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마음의 병을 앓는다는 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으니까 난 네가 병을 자랑스레 여겼으면 싶다.
연인의 부모님이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는 말에서 말이다. 나는 사실 한번 마음을 주면 다 퍼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서 이 말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아버지. 나에게는 어떤 일이 맞을까요?"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야 실제로 일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이라고 미리 전제를 깔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만 말하자면, 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네가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면 좋겠구나."
나는 아직 어설프다. 하지만 언젠가 존경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싶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짜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는 날이 오면.. 아버지 방에서 그 술병을 열고 싶다.
역시, 보고 싶었던 엄마와 아빠가 생각이 났다. 다시 내가 엄마와 이렇게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엄마에게 나는 무슨 말을 건넬까?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엄마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잠시 입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병원이 가까워서 매일 점심시간에 엄마에게 들르곤 했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분들께서 는 딸이 예쁘고 착하다며 칭찬을 하셨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이 좋았다.
"윤경아, 엄마는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어. 지금 죽어도 좋을 것 같다. 네가 결혼도 하고 이렇게 예쁜 초롱이도 낳고 하니 엄마는 이제 아무런 소원이 없어.. 이제까지 마음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아야 해. 알았지? 남편이 혹시라도 속상하게 하더라도 그냥 예쁘게 봐줘. 엄마 눈에는 다 너무 예쁘게 보인다. 알았지?"
"엄마, 무슨 소리야! 이제 지금부터 오래오래 더 재미있게 살아야지! 초롱이가 대학 가고 결혼도 하고 그때까지 엄마가 내 옆에 있어줘야지!! 그리고 그런 말 하지 마! 엄마 죽는다거나 그런 말 하면 나 정말 너무너무 속상하고 기분 나빠! 그런 생각하지 말고, 우리 얼른 퇴원해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아니야, 엄마는 이제 정말 괜찮아. 엄마가 더 오래 아프면 너네만 힘들지 뭐. 엄마는 괜찮아.."
이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쿵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정말 엄마가 우리를 떠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지... 나는 아직 엄마랑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제부터 엄마에게 정말 잘하고 싶은데...'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입원 중에는 혼자서 발을 못 씻어서 답답해해서, 매일 엄마 병문안을 와서 엄마의 발을 씻겨드렸다. 그때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떠난다고 하더라도 남은 우리들이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유령열차, 아니 그 어떤 것이라도 한 번만 더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엄마에게 나는 사과를 하고 싶다.
엄마로 인해 힘들었다는 것 다 거짓말이라고, 엄마 때문에 우리가 힘들어진 것이 아닌데, 나는 그저 나에게 지워진 이 경제적인 부담을 모두 다 엄마 탓이라고 말했던 것이 죄송하다고 말이다.
그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핑계를 댄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 이런 상황이 나는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나 늦게 들어와도 나에게 아무 말하지 마!
나 주말에 놀러 가! 나도 좀 숨 쉬어야 하니까 뭐라 하지 마!
나 친구들이랑 놀러 갈 거야.'
이렇게 혼자 남겨진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나만 생각하고 이해해 주기만을 바랬던 이기적인 딸이었음을 엄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엄마, 정말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기면, 엄마랑 더 많은 시간 보내고 싶어. 그동안 내가 엄마와 바꾼 그 시간들보다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지 이제야 알았어. 미안해.. 엄마 그리고 사랑해..
너무 보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도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에 나는 더 눈물이 흘러나왔었다.
주인공들이 사고가 나기 전 피해자들과 만난 열차 안에서 헤어짐 직전에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사랑하는 유가족들을 열차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열차 안에 남으려고 했던 유가족들을 일부러 다 전 정거장에서 내리게 했다. 그 이유는 피해자들은 이미 다음 역에서 탈선 사고로 죽는 기억을 가지고 그 열차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전에 나는 더더욱 엄마 생각이 났던 것 같다.
이미 엄마는 우리를 언제 떠나도 괜찮게 우리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 엄마는 괜찮다,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를 수없이 우리에게 말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의 힐링을 하려고 읽고 들었던 책인데, 엄마 생각에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엄마,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