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엄마, 비 와도 우리 마라톤 뛸 거지??????"
초콩이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니, 비가 오면 우린 마라톤 안 뛰고 그냥 돌아올 거야!"
"엄마, 왜!! 우리 비옷 입었잖아!"
"비 오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취소할 수도 있고, 위험하고 미끄러워서 안 하는 거야!"
"힝! 엄마 미워!"
몇 년 전 동생의 추천으로 알게 된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어린이마라톤대회에 우리는 매년 참석을 하고 있다.
동생이 추천해 준 때만 해도 코로나 시절이라 그냥 장소 지정 없이 대회전에 배송된 옷과 등번호를 붙이고 근처 공원등에서 4Km 정도를 뛰며,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면 완주로 인정이 되었었다.
그때 우리는 동생네 가족과 함께 광교저수지를 함께 걷고 뛰며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생네가 일산으로 이사 가기 전이었고, 함께 수지에 살던 때였지만, 각자의 일상이 바빠서 모두 다 얼굴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마라톤을 하면 조카들과 동생 모두를 함께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후에 동생네는 조카들의 학원 일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만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진심인 가족이 되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다시 각 지역별로 모여서 마라톤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 해에 나는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세종시에 겨우 신청을 하게 되었었다. 그때가 아마도 2년 전일 것 같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고, 마치 여름이 성큼 다가온듯한 날씨였다.
우리는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출발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마라톤 코스를 돌면서 완주의 기쁨도 누리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장에서 재미있는 게임, 체험 등을 하면서 기념품도 잔뜩 받아왔었다.
그날은 마라톤을 제대로 뛰지 못하여 가족 자전거로 세종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힘들었지만 싱그러운 바람을 느꼈던 재미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올해의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어린이마라톤의 신청일을 깜박한 탓에 나는 또 서울과 경기 지역 참가가 마감되는 바람에 다시 또 세종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세종까지는 거리도 좀 있어서 고민도 되었지만, 2년 전의 기억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재미있었기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종으로 선택을 했다.
'비가 오는데 가지 말까?'
'조금만 더 자다가 일어나자..'
어제는 병원에서 한 달에 한번 호르몬 주사를 맞고 오는 날이라 몸이 힘들었다.
남편은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가지 말자고 할 것이 뻔했기에,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 핑계를 대고 있긴 했지만, 나도 이 행사에 진심인 사람 중에 한명이기에 힘들어도 다녀오고 싶었다. 일 년에 한번 쯤은 국제어린이마라톤을 기분 좋게 기부도 하면서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새벽 6시 30분, 더 이상 이불속에서 뭉그적 댈 시간이 없었다.
후다닥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초콩아, 초롱아 얼른 일어나!!!"
부산스럽게 깨우는 소리에 남편이 짜증을 냈다. 남편의 컨디션이 또 하필이면 다시 안 좋아진 것이다.
최근 회사에서 일도 많아진 탓에 피곤해했는데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미리 준비하고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7시 40분이 되었고,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빠른 길로 검색을 해도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 길에 내 옆에 앉은 초콩이는 엘리하이로 요즘 푹 빠진 한국사를 듣기 시작했고, 뒷자리에 앉은 남편과 초롱이는 금세 잠이 든 것 같았다. 운전하면서 내내 남편의 눈치가 보였지만, 그냥 모르는 척 나도 윌라 오디오북으로 토지를 들으면서 출발했다.
빠른 길로 계속 검색을 하다 보니 내비게이션은 자꾸 나를 이상한 국도로 안내했고, 허리디스크가 있는 남편은 울렁꿀렁한 길에 다시 짜증을 냈다.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은 연휴였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모두의 기분이 덩달아 우울해진 것이라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종시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오다 말다 한 비는 이제는 그칠락 말락 해서 나와 아이들은 준비해 간 비옷을 입었다. 그냥 기념품만 받아서 올 생각에 도착한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도 있었고 비가 그쳐가서 그런지 이런저런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완주는 못했어도 기념품은 가져가야지! 비가 와서 완주를 못한 거니까!"
평소 같으면 달려가는 것부터 사진에 모두 담을 생각이었지만, 집에서부터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한 남편을 보고 있자니 그냥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서 만지작 거릴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내가 기억했던 햇살 가득한 잔디밭은 빗물로 질퍽거리는 잔디밭으로 변해 있었고, 물웅덩이를 피해서 기념품들을 받으려고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몇 가지 미션을 하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들을 하고 있었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 그냥 갈 수 없었기에 몇 개만 하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럴 때는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초파와 아이들은 이미 벌써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체험을 하다 보니 우리의 두 손이 기념품들로 가득했고, 완주 기념품까지 알차게 챙긴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이들은 아직 남은 체험들을 하나하나 다 해보고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점심을 먹고 올라가야 하는 일정이 또 있었기에 이쯤에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년에는 절대 신청하지 마!!"
라며 버럭버럭 했던 남편도 어느새 마음이 풀어져 있을 것을 알기에, 내년에는 일찍 일찍 집 근처인 안양 쪽에 신청을 성공하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는 그쳤고,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왕복 5시간 넘는 운전을 했지만 웬일인지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받아왔던 기념품들을 하나하나 펼쳐볼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사실 비싼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닌 기념품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기념품들은 매년 꼭 가지고 싶다.